한국 주식이 싸다고? … 당신은 속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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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거래소 1층 로비에 전시된 황소와 곰 조각상. 황소는 강세장을, 곰은 약세장을 뜻한다. [중앙포토]

“한국 증시의 PER은 여전히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이다. 기업의 높은 이익 성장률을 감안하면 가격 매력이 높다.”

 삼성증권이 지난 2일 발간한 ‘1월 주식시장 전망’ 보고서의 일부다. 한국 주식의 PER(주가수익배율)이 약 9배로,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낮고 또 과거보다 낮다고 돼 있다. 즉, 한국 주식이 외국은 물론 과거보다 싸서 앞으로 주가가 오를 것이므로 매수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는 작은 글씨로 주석이 달려 있다. ‘12개월 선행 PER 기준’. 기업이 낸 실제 이익이 아니라, 1년 후의 이익 예상치를 기준으로 PER을 계산했다는 뜻이다. 이 증권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른바 시장전문가들은 모두 한국 주식 PER이 8~9배라고 말한다. 이를 근거로 ‘싸니까 투자하라’고 권한다.

조재민 대표

 사실은 이와 다르다. 실제 한국 주식은 듣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 KB자산운용 조재민 대표가 ‘개인적으로’ 20년간 한국 주식의 진짜 PER을 분석했다. <그래프 참조> 애널리스트들의 1년 후 기업이익 추정치가 아닌, 거래소 기업들이 낸 실제 실적을 근거로 계산한 PER이다. 이에 따르면 PER이 10배 밑으로 내려간 적은 2005년 이후 한 번도 없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최근 10년간의 평균 PER은 14.5배나 됐다. 기업 실적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2011년은 10.5~11배로 예상된다.

 현재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눠 구하는 PER은 주가가 얼마나 높게 평가돼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분석가들의 용어로는 ‘밸류에이션’, 주식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다. 아무리 이익이 많이 나고 미래가 장밋빛인 기업이라도 PER이 높다면, 즉 오를 대로 올랐다면 주식투자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싸다, 비싸다를 말할 때의 PER이 1년 앞 이익추정치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일반투자자들은 아니다. 주부이자 8년차 전업투자자로 4억원을 주식으로 굴리는 김모(45)씨는 “증권사에서 얘기하는 PER이 1년 뒤의 이익 예상을 근거로 한 것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기업 이익을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 이익이 커지면 PER은 낮아진다. 즉 1년 선행 PER을 사용하면, 실제보다 더 싸게 보인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이 속은 셈이다.

 KB자산운용 조 대표는 “선진국 주식 PER이 13배 안팎이므로 실제 PER을 기준으로 판단해도 한국 주식이 비싸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싸지는 않다”며 “투자자들을 호도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를 주도하는 주요 종목 중에서도 PER이 10배 밑인 것은 이미 거의 없다.

 1년 선행 PER을 쓰는 게 꼭 부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가는 속성상 과거의 실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과거에 이익을 많이 낸 기업이 앞으로도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은 아니므로 선행 PER이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지식 없이 직접투자에 나서는 개인 투자자가 유독 많은 우리나라 투자문화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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