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모차르트와 공자 :〈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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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공사(工事)에 착수하면 비로소 일꾼들에게 할 일이 생긴다." 독일의 시인 실러가 철학자 칸트를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다. 칸트 같은 대철학자가 철학의 새로운 체계를 구성해놓으면 주석자들이 달려들어 내용을 풍요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칸트가 일꾼들에게 할 일을 주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자질 때문이라기보다는 18세기 독일이라는 상황 덕분이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의 철학적 의미를 정립한 칸트 역시 자기 시간과 공간의 산물이 아닐까?

어느 분야든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어려움도 많겠지만 그만큼 자유롭기도 할 터이다. 선례가 없다는 것은 독창적인 사람에겐 망망함보다 해방감을 준다. 아무도 형식과 틀을 만들어놓지 않았기에 모든 게 마음대로다.

칸트와 동시대인인 모차르트가 불과 35년을 살면서 오늘날까지도 즐겨 연주되는 숱한 곡들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천재성에서보다 그런 자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화성의 혁명이 일어난 시대였기에 그는 하룻밤 자고 나면 실내 낚시터에서 고기 낚듯이 새 악상이 떠오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설사 오늘날 누가 모차르트의 작품과 '같은 수준'의 곡을 쓴다 해도 아무도 그것에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초창기의 것은 초창기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 특히 인색한 게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다.

무슨 고전을 말하려고 이렇게 길다란 사족으로 시작할까? 유학의 대표적인 경전이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조직 원리, 철학, 도덕, 문화와 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공자의 〈논어〉다.

"군자는 정의를 표준으로 삼고 소인은 이익을 표준으로 삼는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 "공손하면 모멸당하지 않고, 너그러우면 민심을 얻고, 믿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신뢰하고, 민첩하면 공을 이루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이 저절로 돕는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칸트와 모차르트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칸트가 시간과 공간 개념을 '멋대로' 정립할 수 있었던 이유, 모차르트가 소나타든 교향곡이든 소품이든 '되는 대로'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전까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자 역시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함부로'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공교롭게도 세계적으로 보면 그리스 고전 철학이 발달한 시대와 일치한다. 철학이 없던 시대에 원질을 묻는다는, 당시로선 참신한 철학적 물음을 제기한 그리스 철학자들 역시 공자처럼 '함부로' 원질을 해명했다. 탈레스가 물을, 아낙시메네스가 공기를 원질로 든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 정치학, 논리학, 생물학, 천문학, 심리학, 윤리학, 기술 과학 등등 잡학의 대가일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초창기의 혜택'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선두주자의 페널티'를 말한 베블렌이라 해도 이 점은 인정할 거다).

하지만 자연을 대상화시키는 것("원질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한 원조 서양 철학과는 달리 원조 동양 철학은 인간("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을 문제삼았기에 애초부터 정치와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공자가 천하를 주유한 것은 자신의 정치 철학을 받아줄 군주를 찾기 위함이었다).

"옛것을 되새겨 새것을 알면 능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정치에서 도덕을 근본으로 삼는다면, 이는 마치 북극성이 북극에 자리잡고 뭇 별들이 사방으로 돌아 북극성을 향함과 같다."

중심의 개념을 빼고서는 〈논어〉를 논할 수 없다. 앞의 말은 '옛것'이라는 시간적인 중심을, 뒤의 말은 '북극성'이라는 공간적인 중심을 말하고 있다.

시간적인 중심은 '옛것 중의 옛것', 곧 중국 역사의 시작인 삼대, 그 중에서도 특히 주나라(물론 서주)의 예법이다. 전란으로 얼룩진 난세에 살았던 공자는 주나라의 봉건 질서와 안정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이렇게 복고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던 탓에 제후들은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공간적인 중심은 천자다. 천자는 북극성처럼 하늘의 중심에 붙박혀 있고 이로부터 제후, 신하, 백성이 수직적으로 서열지어진다. 공자는 당시의 세상이 혼란스러워진 이유가 천자라는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수직적 구조를 회복한다면 다시 '태평성대'(요순 시대를 뜻하는 공자의 용어다)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논어〉에서 가르치는 유학 이념의 근본은 중심을 가진 질서다. 이 사상을 확대하면 국제 질서에도 적용된다. 천하의 중심은 중국의 천자이고, 사방의 모든 민족과 나라는 오랑캐가 되는 것이다. "이적(夷狄)에 임금 있음이 중화(中華)에 임금 없음만 못하다."

이렇게 보면 유학의 자기도착적 이념은 남송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 주희가 정리한 게 아니라 유학이 발생할 때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유학에 바탕한 수직적 세계관이며, 2000년간의 제국사를 이끌어온(아울러 실패해온) 동양 사회의 사상적 원동력이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논어〉의 본질은 엄연히 국가 경영을 위한 정치철학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논어〉를 도덕교과서쯤으로 여긴다. 그 배후에는 〈논어〉와 공자가 누린 '초창기의 혜택'이 숨어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 말을 옛것에 얽매이는 데 대한 경고라고 해석한다면 〈논어〉에는 자기도착만이 아니라 자기부정도 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남경태 (dimeola@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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