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교육, 순위 매기는 게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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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베토벤 중 누가 더 음악을 잘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피아노 학원이 아이들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지는 우리 사회. 미국 미시건 앤아버(Ann Arbor) 음대 크리스토퍼 하딩(Christopher Harding·41·사진) 교수가 한국 음악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직설화법을 쏟아냈다.

 그는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를 비롯해 대학교에서도 A학점은 전체의 30%를 넘지 못하게 순위를 매기고 있다”며 “이런 순위 문화가 한국 음악교육의 가장 큰 숙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물도 심어놓으면 싹을 틔울 시간을 주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하딩 교수는 지난 9월부터 서울대 교환교수로 일했다. 1999년부터 꾸준히 한국을 찾고 있다. 이번이 8번째 방한이다. 지난 석 달간 서울대·이화여대·숙명여대·동덕여대·부산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예중·예고를 비롯해 학원가도 둘러봤다고 한다.

 그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예로 들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보다 작곡 등에서 훨씬 늦었지만 누구의 음악이 더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신동 소리를 들으며 6살부터 연주 여행을 떠난 모차르트는 35살에 세상을 떠났다. 베토벤은 서른다섯 살인 1808년에야 “짜자자잔”으로 유명해진 운명교향곡을 내놓았다.

 하딩 교수는 “음악에서 순위를 매기는 것은 한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방법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일본인 아내를 둔 그는 한국의 교육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내년부터 앤아버 음대 피아노 학과장으로 일할 예정이다.

 “한국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 기교가 좋고 음악에 대한 정보나 이해도가 빠르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그 발전이 더뎌집니다. 다른 나라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이해가 느리지만 스스로 터득해 이해를 넓혀가죠. 음악은 악기나 기술보다 삶에서 느끼는 감정이 중요합니다.”

 하딩 교수는 음악가의 발전은 ‘계단식’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부모나 선생님들이 기다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음악 조기 교육 열풍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5~6살 때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피아노를 시작하지만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곡은 치지 못하게 합니다.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기교만 강조하는 곡을 강조해서는 안 되요.”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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