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봤습니다] 폴크스바겐 시로코 2.0 TS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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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코 2.0 TSI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데 6.9초면 될 정도로 날렵하다.

내년 2월 국내에 출시될 폴크스바겐 시로코를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리 시승했다. 시로코는 가장 ‘화끈한’ 폴크스바겐이다. ‘재미’로 뾰족이 수렴된 성격 때문이다. 승·하차 편의성이나 짐 공간보다 멋을 앞세운 차다. 도어는 두 개뿐이다. 골프나 파사트, 제타처럼 시로코 역시 바람 이름이다. 아프리카에서 남유럽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시로코는 여러모로 골프와 인연이 깊다. 지난 1974년 잇따라 데뷔했다. 폴크스바겐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폴크스바겐의 시작을 이끈 ‘딱정벌레차’ 비틀은 후광만큼 그늘 또한 짙게 드리웠다. 전적으로 의존했던 비틀 판매가 하향곡선을 그리자 폴크스바겐은 후속 개발을 서둘렀다. 공랭식 엔진을 꽁무니에 얹고 뒷바퀴 굴리는 구조에서도 벗어나야 했다.

 폴크스바겐은 골프를 통해 모든 것을 바꿨다. 엔진 위치는 꽁무니에서 앞머리로, 냉각방식은 공랭식에서 수랭식으로, 굴림방식은 뒷바퀴에서 앞바퀴로 옮겼다. 그런데 골프 한 차종에 의지하기엔 불안했다. 폴크스바겐은 스포티한 성격의 차도 함께 내놓기로 결심했다. 폴크스바겐이 위탁생산해 팔던 카르만 기아 쿠페의 후속이기도 했다. 바로 시로코였다.

 둘의 역할은 뚜렷이 나뉘었다. 골프는 현실과 이성을 만족시켰고, 시로코는 환상과 감성을 자극했다. 골프는 데뷔 이후 지금의 6세대까지 꾸준히 진화했다. 반면 시로코는 88년 잠시 명맥이 끊겼다가 2008년 지금의 3세대로 부활했다. 예나 지금이나 시로코는 독일의 외주생산업체인 카르만이 만든다. 뼈대 및 엔진, 변속기를 골프와 함께 쓰는 점 역시 변함없다.

 하지만 외모는 전연 딴판이다. 골프와 공통분모를 눈치채기 어렵다. 가파른 기둥과 기다란 지붕에 속도감이 물씬 배었다. 가늘게 뜬 눈매는 자못 비장하다. 빵빵하게 부푼 힙은 더없이 섹시하다. 액세서리로 멋을 낸 R-라인이어서 보다 날렵해 보인다. 운전석에 앉으면 긴장이 밀려든다. 몸을 조이는 시트와 바짝 주저앉은 지붕 때문이다. 뒷좌석은 오붓하다.

 시승차는 시로코 2.0 TSI.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210마력 엔진과 자동 6단 듀얼클러치(DSG) 변속기를 짝지었다. 골프 GTI와 같은 구성이다. 차분하게 숨통이 트이는 엔진이나 잔잔히 숨죽인 아이들링 모두 GTI를 쏙 빼닮았다. 로마 도심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가속페달을 건들 때마다 시로코는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손아귀에 땀이 절로 밴다.

 시로코 2.0 TSI의 제원성능은 0→시속 100㎞ 가속 6.9초, 최고속도 시속 238㎞. 가속 때마다 샘솟는 사운드는 미스터리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4기통 엔진이지만 숨찬 비명 대신 구성진 목청으로 가슴을 적신다. 게다가 이 같은 연주는 실내에서만 들을 수 있다. 로마 시내가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를 오를 때 시로코는 이날 하루 중 가장 활기찼다.

 시로코는 굽잇길을 휘몰이장단으로 헤집었다. 하체는 GTI보다 한층 단단하다. 보다 낮은 무게중심과 더 넓은 차폭에 맞춰 손질한 결과다. 시로코는 뒷바퀴를 아스팔트에 사정없이 짓이기며 코너를 똑소리 나게 먹어 치웠다. 국내에 선보일 시로코는 직렬 4기통 2.0L 170마력 디젤 터보 직분사 엔진을 얹는다. 가격은 같은 엔진의 골프보다 비쌀 전망이다.

김기범 중앙SUNDAY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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