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금융씨…고객에 꼭 필요한 정보 안 알려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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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사원 이모(37·여)씨는 한 달 전 보이스피싱 사기로 4300만원의 피해를 보았다. 검찰을 사칭하며 “조직폭력배 자금과 관련돼 소명정보가 필요하다”고 다그치는 범인에게 속아 가짜 금융감독원 사이트에서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등을 입력한 게 화근이었다. 범인은 이 정보로 이씨가 거래하는 3개 카드사로부터 1300만~1550만원씩을 빼갔다. 본인 과실이 있다지만 이씨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한다. 범인이 돈을 빼간 게 ‘카드론’ 대출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동안 자신이 카드론을 받을 수 있는지, 한도가 얼마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카드사가 알려주지 않아서다. 카드사가 이 씨에게 보냈던 안내장엔 ‘신용구매 한도’와 ‘현금서비스 한도’는 적혀 있지만 ‘카드론’ 항목은 아예 없다. 이씨는 “고객에게 카드론 대출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은 카드사도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중요한 금리가 빠져 있는 대출 연장 안내문.

 ‘고객이 왕’이란 소리는 한국 금융회사에선 아직 한참 먼 얘기다. 고객 정보는 속속들이 요구하면서도 정작 고객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는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특히 이씨와 같은 피해자가 늘고 있는 카드론이 문제다. 카드사 관계자조차 “고객에게 알리는 사항에 왜 카드론만 빠져 있는지 우리도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금감원 관계자는 “2002년 7월 만들어진 여신금융감독규정에 ‘신용카드와 현금서비스는 사전에 회원 동의를 받아 고지할 의무가 규정돼 있지만 카드론은 빠져 있었다”며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 고객에게 카드론 가능 여부를 반드시 묻도록 최근에 규정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카드론 항목이 없는 한 카드사의 신규 발급 안내문.

 은행의 ‘대출연장안내문’도 불친절하긴 마찬가지다. 회사원 강모(45)씨는 이달 초 거래은행으로부터 ‘마이너스통장 대출 기한이 만료됐으니 갱신 요청을 하라’는 안내장을 받았다. 하지만 안내장엔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대출금액과 기한 등이 적혀 있을 뿐 대출금리가 얼마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궁금해진 강씨가 지점에 전화해 “안내장을 받았다”고 하자 창구 직원은 “본인 확인을 한 뒤 동의 의사만 밝히면 자동으로 연장되므로 굳이 창구에 나올 필요가 없다’는 안내만 해줬다. 답답해진 강씨가 “금리는 얼마냐”고 묻자 “안내를 못 받았느냐”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손해보험사도 ‘불친절한 금융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부 한모(42)씨는 최근 8년째 들고 있는 자동차보험을 갱신하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보험 모집인이 한 말은 “카드번호를 알려주시면 된다”는 단 한마디였다. 올해부턴 사고 때 자기부담금 비율이 바뀌고, 중고 부품 이용이 가능해지는 등 중요한 변화가 많다는 등의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다.

나현철·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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