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지키는 선생님들, 건강은 우리가 지켜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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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갓을 만드는 인간문화재 박창영(왼쪽, 한독약품 제공)씨가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초음파검사(오른쪽)를 받고 있다. [김경록 기자]

중요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돼 있는 전통 갓 제작 기술 보유자 박창영(68) 입자장(갓 제작 장인)은 지난 15일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을 찾았다. 정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비용이 부담스러워 건강보험으로 보장되는 기본적인 항목 외에는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긴 하지. 그런데 그건 재료비나 작품 활동비까지 다 포함된 거야.” 박씨가 인간문화재로서 문화재청에서 받는 전승지원금은 130만원 정도. 작품을 만들 때면 한두달씩 집중해야 하는 그에겐 사실 생활비로도 빠듯한 돈이다.

하지만 이날은 기본적인 건강검진 항목 외에도 그동안 좋지 않았던 호흡기에 정밀 검진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한독약품의 ‘인간문화재 지킴이’ 프로그램 덕분이다. 박씨는 “아들 말고는 전수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내가 건강해야 갓 만드는 걸 계속 할 수 있는데 이렇게 건강검진을 받고 나니 어쩐지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400여개의 중요무형문화재가 지정돼 있지만, 전수자가 없거나 명맥이 끊긴 게 많아 이를 재현할 수 있는 인간문화재는 겨우 203명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들의 평균 연령은 69.3세다. 대부분 노인층인 이들에게 건강은 곧 문화재의 보존능력인 셈이다.

올해로 3년째인 한독약품의 인간문화재 지킴이는 바로 저소득층 인간문화재들이 격년으로 무료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문화재청, 전국 11개 협력병원이 함께한다. 김영진(55) 한독약품 회장은 “최근 우리 문화유산인 택견·줄타기·한산모시짜기가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등 문화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인간문화재들이 건강해야 우리나라만의 문화가치가 건강하게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평균 건강 검진비용 60만원은 한독약품 직원들과 회사가 함께 기부해 마련한다. 직원이 일정금액을 기부한다고 약정하면 회사도 동일한 금액만큼 기부해 만든 ‘사회공헌펀드’ 중 일부를 이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250여명의 직원들이 참여해 모은 사회공헌펀드는 3000만원에 이른다.

올해부터는 대상을 75세에서 80세로 확대했다. 매해 대상자 30여명 중 20명 정도가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가야금 산조 및 병창을 하는 이영희(73·여)씨의 경우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장용종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잘못하면 대장암으로 발전될 수 있었지만 초기에 발견한 덕분에 지금은 건강하게 문화전수에 힘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에는 모든 인간문화재를 대상으로 독감·폐렴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한독약품측에서 전국 123개 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하고 가까운 지점의 직원들이 인간문화재들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조선왕조궁중음식을 재현하는 인간문화재 38호 한복려(64·여)씨는 “문화재인 덕에 혜택을 받았다”며 트위터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독약품 홍보팀의 한경주 대리는 “초반엔 선생님들의 건강에만 신경을 썼는데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일반인들에게 전통문화 체험 기회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난해 추석에는 제조공장이 있는 충북 음성에서 평소 직원들이 봉사활동을 해온 시설의 어린이들과 어르신 200명을 초청해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관람하고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독약품을 통해 건강검진을 받은 인간문화재 김춘택(51)씨가 직접 와서 공연을 했다. 공연 및 기타 진행비용은 회사 측에서 제공했다.

올해는 ‘찾아가는 인간문화재지킴이 나눔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학교나 단체가 만나보고 싶은 인간문화재에 대한 사연을 오는 30일까지 홈페이지(www.handok.co.kr) 이벤트란에 올리면, 사연을 채택해 공연을 열어 줄 계획이다.

이예지 행복동행 기자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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