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로 인명 구하다 숨진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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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9월 13일 오후 5시쯤.

 “어어어… 풍덩, 풍덩”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메추리섬 선착장 위에서 놀던 남자 초등생(7)과 여중생(13)이 발을 헛디디며 바닷물에 빠졌다.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김택구(50·사진)씨와 아들 김영수(24)씨가 이 장면을 보고는 급히 물에 뛰어들었다.

 물살은 건장한 성인 남자가 감당하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거세고 사나웠다. 김씨 부자(父子)는 온 힘을 다해 여학생을 구했다. 김씨는 영수씨에게 여학생을 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한 뒤 남자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바닷물을 헤치고 나갔다.

 영수씨는 뭍으로 나오자마자 기진맥진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지막 사투를 보지 못했다. 거친 물살에 휘말린 김씨는 탈진해 남자 아이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20분 사이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아이를 두고 혼자 나왔다면 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김씨는 결코 아이를 놓지 않았다. 아이의 목을 꼭 껴안고 한 팔로 수영을 하며 수차례 뭍으로 나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거센 바닷물은 그의 사투를 외면했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씨가 20년 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인명을 구조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김씨는 우리 곁에 숨어 있던 작은 영웅이었다. 부인 이춘광(46)씨는 남편 김씨를 “인정이 많고, 주변에 싫은 소리를 한 번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아들은 구조 당시 바닷물을 많이 먹어 병원에서 2주간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영수씨는 “아버지는 사람 생명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며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용기를 주셨다”고 말했다.

 고(故) 김택구씨는 22일 한국사회복지협의회(회장 차흥봉)와 S-OIL(에쓰-오일)이 주관하고, 중앙일보와 보건복지부·경찰청·KBS가 후원하는 ‘2011 올해의 시민영웅상’을 받는다. 올 8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청사포 방파제에서 큰 파도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려다 숨진 신상봉(37·자영업)씨도 시민영웅 의사자(義死者)로 선정됐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을 구하려다 다친 이들도 상을 받는다. 7월 경기도 광주에서 집중호우로 반지하방에 갇힌 모자(母子)를 구출하려다 부상당한 이기홍(37·회사원)씨, 은행강도를 검거하다 칼에 찔린 김태영(36·회사원)씨 등 4명은 시민영웅 의상자로 뽑혔다. 용기있게 이웃을 도운 14명도 수상한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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