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줄거리를 내맘대로 '바꿔'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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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영화, 인터넷 상영관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제작발표회 등이 줄을 이었지만, 정작 인터넷 영화는 아직 몇 편 되지 않는다. 그 중 최초의 인터랙티브 영화인 ‘영호프의 하루’나 ‘01412(파사신검)’, ‘여보세요!’ 등이 눈길을 끈다.

상황 선택은 관객의 몫

''내가 주인공이라면 저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할텐데….'', ''내가 저 영화 감독이라면 마지막을 저렇게 처리하지 않고 이렇게 했을 텐데….’

극장을 나오며 누구나 한번쯤 품었음직한 생각이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의 것’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그 작업이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수요자인 관객들의 몫은 아쉬운 상상을 해보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관객이 이 작업에 참여할 수는 없는 걸까. 주인공에 감정 이입되어 관객이 상황을 결정해가며 보는 영화, 지금도 볼 수 있다. 바로 인터넷 영화가 그것.

세계 최초의 인터랙티브 영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 조영호 감독의 ‘영호프의 하루’는 세 번에 걸쳐 관객이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영화다. 따라서 관객은 각기 다른 8개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보게 되는 셈이다.

지난 해부터 인터넷 영화, 인터넷 상영관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이에 뒤따른 담론과 제작발표회 등은 줄을 이었지만, 정작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영화는 아직 몇 편 되지 않는다. 초기 단계인 만큼 시장 형성이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

인터넷 영화란?

일반 극장의 스크린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상영되는 영화’를 뜻한다. 그러나 이건 좀 넓은 의미여서 스크린과 인터넷에서 동시 개봉하는 극장용 극영화나 VOD 서비스를 포함한다. 좀더 좁은 의미로는 인터넷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1:1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영화, 즉 인터랙티브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나온 ‘360° forward movie’의 경우 다중 촬영을 하여 관객들이 시야 방향을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한 영화로, 기술적으로 한 단계 진보한 인터랙티브 영화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영화는 나름의 특징을 갖는다. 우선 언제든 원하는 때에, 인터넷이 가능한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극장용 영화보다 접근성이 뛰어나다.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인터넷 영화를 보려면 전용선이나 고속 통신망이 깔려있어야 하고, 리얼플레이어나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와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봐도 중간중간 끊기거나 화면이 멈추는 경우가 잦다.

인터넷 영화는 단순히 인터넷으로 유통된다는 특징 외에 제작상 혹은 장르적인 특징도 갖는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보기 때문에 롱테이크의 정적인 화면보다는 빠르고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 더 많이 사용된다. 마치 CF를 보는 듯한 감각 말이다.

분위기나 소재도 젊은 층의 기호에 맞춰져 있다. ‘01412’의 경우 컴퓨터를 매개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가며 미스테리를 풀어간다는 설정 자체가 21세기적이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세대는 긴 옷자락을 끌거나 총 대신 칼을 휘두르는 다분히 고풍스럽고 오리엔탈한 인물이나 배경에서 이국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만은 분명하다. 동양에서조차 말이다.

반면 ‘영호프의 하루’의 경우 분위기나 내용은 그다지 디지털적이지 않지만 가장 인터넷 영화다운 특징이 돋보이는 인터랙티브 영화다. 조영호 감독은 인터넷 영화를 정의하는 기준이 ‘인터랙티브’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누구나 만들어 상영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 물론 여기서 ‘누구나’는 영화를 만들 만한 열정과 아이디어, 약간의 제작비가 있는 누구나를 뜻한다. 실제로 지난 5월 한 달간 nimf. neotiming.com에서 열린 제1회 네오인터랙티브영화축제에서는 제작지원 공모전, 시놉시스 공모전과 함께 네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대학 영화동아리와 고등학생 팀의 작품도 있었다. 분명 극장용 극영화와는 제작 환경이 다른 것이다.

현재 인터넷 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로는 네오타이밍(http://www.neotiming.com)의 ‘영호프의 하루’, ‘밀레니엄 살인 행진곡’과 오렌지CC(http://www.01412.co.kr)가 내놓은 ‘01412(파사신검)’, 그리고 iCBN(http://www.icbn.net)에서 ‘여보세요!’를 볼 수 있다. ‘여보세요!’는 강제규필름에서 만든 김진성 감독의 작품이며, iCBN에서는 인터넷 영화 외에 단편 독립영화들도 ‘독립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 지오인터랙티브에서 운영하는 아이드라마(http://www.dramart.com)에서는 PPL 광고기법으로 상품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전용 인터랙티브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는데, 현재 ‘에피소드2’를 상영 중이다.

인터넷 영화를 알려면 그에 대한 백 마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가장 빠른, 그리고 좋은 방법일 터. 과연 주체적인 영화 보기가 가능한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무더운 여름에 즐길 만한 잘 만들어진 인터넷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밀레니엄 살인 행진곡

감독:조영호/형식:6mm 디지털 영화/상영관:네오타이밍(http://www. neotiming.com)

등장인물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나뉘는 다이아몬드 구조의 인터랙티브 영화. 밀레니엄 파티를 위해 오렌지클럽 친구들이 외딴 별장에 모여드는데 갑작스런 비명 소리와 함께 별장 주인 은미가 시체로 발견된다. 고립된 공간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하게 되는데.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A1과 A2는 살인사건 발생까지의 전개를 보여주고, B는 등장인물 각각의 알리바이가 담긴 7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관객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선택해 볼 수 있다. 마지막 C에서 범인이 드러나며 이야기가 종결된다. 추리게임을 즐길 수 있는 스릴러물로, 유진박의 바이올린 선율이 긴장감을 더해준다.

01412(파사신검)

감독:박태찬/주연:박은혜·김영현·하랑·유지태/상영관:01412 (http://www.01412.co.kr)

CF감독인 박태찬 감독이 연출한 6부작 미스테리 무협 멜로물. 가상세계 어느 공간에서 쫓기던 일월공주와 유리는 목걸이의 주인만이 자신들의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대왕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반쪽의 목걸이를 지니고 있는 주인공을 찾아 현실세계로 오게 된다. 현실세계의 영원과 광석 일행은 우연히 손에 들어온 ‘01412 파사신검’이라는 CD롬에 의해 가상공간에 접근하게 되고, 이들 일행은 가상세계의 지배자 마고에 의해 한 명씩 죽어가게 된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영화.

뱀파이어 블루

감독:윤재구/주연:김경범·민서영·고호경/상영관:네오타이밍(http://www.neotiming.com)

지난 5월 열린 제1회 NIMF에서 상영된 영화 가운데 하나로 현역 충무로 영화인들이 만든 호러물. 각 상황마다 관객이 다음 내용을 선택해 보는 피라미드식 인터랙티브 영화다. 15년을 쫓아다닌 혜진과의 첫날 밤, 성열은 파란 콘돔 없이는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혜진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인간 통조림을 만드는 뱀파이어 소굴로 들어가게 된다.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온 성열은 뱀파이어를 처단할 것인가 콘돔을 구해 돌아갈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선택은 관객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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