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80% “안정지원” … 중위권 대접전 예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재수할 마음을 버렸습니다. 꼭 합격할 수 있는 대학을 짚어주세요.”(세화여고3 박나래양)

“2014학년 수능이 바뀌기 때문에 내년에 재수하면 더 불안해질 겁니다. 올해 안정권으로 지원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고려사대부고 정경영 교사)

글=박정식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지난 12일 서울 대청중 강당에 마련된 서울시교육청 대입 정시전형 진학상담소 모습. 늦은 밤인데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줄을 이어 방문해 교사들과 상담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김경록 기자]

지난 12일 서울 대청중 강당에서 진행된 대입 정시전형 대비 수험생 진학상담에서 수험생과 상담교사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송현섭 장학사는 “예년의 경우 상당수 중상위권 수험생들은 재수를 각오해서라도 소신지원하려는 경향이었는데 올해는 한 대학 이상은 반드시 합격할 지원 전략을 놓고 고심하더라”며 지난해와 달라진 입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올해 동점자가 늘고 2014학년도에 입시제도마저 바뀌는 바람에 수험생들의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이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지역 5곳에 진학상담소를 열고 교사 100여 명이 나서 상담을 진행했다. 예약자에 한해 상담하려 했으나 예약을 하지 않은 수험생과 학부모들까지 몰려들면서 5일 동안 모두 2400여 명이 상담을 받고 갔다.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는 기다리다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대청중에 마련된 입시상담소엔 상담 마지막 날 저녁 시간인데도 대기자 줄이 끊이질 않았다. 행사 진행을 맡은 영상필 진행위원은 “대청중 상담소가 강남이라 상담자가 수험생보다 학부모가 더 많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퇴근시간이 지나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는 어머니들도 많아졌다.

고3 학부모 김모(47·여·서울 대치동)씨는 “수시전형 추가합격 대기 번호를 받았지만 불안해 왔다”고 말했다. 동점자 증가에 따른 경쟁률 상승을 언급하며 “수능점수는 평소보다 올랐지만 불안한 마음에 적성에 맞춰 학과를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3 학부모 이모(49·여·서울 송파구 오륜동)씨는 인터넷사이트 3곳에 모의지원한 결과를 갖고 찾아왔다. 이씨는 “대학 두 곳은 철저히 안정지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며 “아이를 재수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강남 학부모는 여전히 미련을 못 버려 기대치가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보다 수능 점수를 올린 재수생도 하향 안정지원을 고심하고 있다. 이과 수험생인 최재욱(19·단국사대부고 졸업)군은 “고3 때보다 점수가 올랐지만 지난해와 달리 올해 입시는 지원선을 가늠하기 힘들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수리영역이 중요해진 데다 1~2점 차로도 지원선이 바뀌는 탓”이라고 하소연했다. 문과 수험생인 박나래(세화여고 3)양은 “지원 점수가 예상합격선보다 10점이 남아야 안정권으로 여긴다”며 상담 결과에 대해 말했다.

“점수가 부족해도 도전장을 던지던 예년과 달라진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의고사보다 성적이 떨어졌다”며 “목표인 유아교육과를 접고 어문계열 2곳에 반드시 합격하는 쪽으로 지원전략을 바꿀 계획”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학상담을 맡은 서울 고려사대부고 정경영 교사는 “강남 지역이 지난해보다 재수를 피하려는 인식이 커졌다”며 ”최상위권을 제외하고 예년과 달리 상담자의 80% 이상이 합격권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수능이 또 쉽게 출제될 경우 2014학년도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수험생 부담이 커져 내년에 재수를 해도 점수를 높인 효과를 얻기 힘들 거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적정과 하향으로 지원 방향을 돌리는 수험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강동고 신성철 교사는 “재수생들도 상담하러 많이 찾아왔다”며 수험생들의 초조한 마음을 전했다. “1점만 틀려도 백분위와 표준점수가 뒤집어져 예년 자료조차 참고가 못돼 수험생들의 두려움이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실업난을 겪고 있는 사회분위기도 고려해 일부 수험생은 대학을 낮춰서라도 전공과 취업을 기준으로 지원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