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의 전쟁사로 본 투자전략] 영화 ‘300’의 테르모필레 전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9면

그리스 시대의 ‘팔랑스’, 즉 보병으로 만들어진 방진의 가장 큰 경쟁력은 어떠한 위기에 직면해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진형이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당시의 조잡한 무기로 방패와 튼튼한 갑옷, 그리고 투구로 중무장한 방진 안의 병사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그리스 방진의 위력은 영화 ‘300’에서 잘 묘사돼 있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적에 맞서 방진을 유지하려면 구성원 간의 강력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옆의 동료를 방어해 줘야 하는 진형에서, 이탈이나 도주 등 적에게 틈을 보이는 행동은 구성원 모두를 큰 위험에 빠뜨린다. 또 같은 이유로 앞의 병사가 쓰러지면 뒤의 병사가 지체 없이 뛰어들어 그 공백을 메워줘야 한다. 옆의 병사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신뢰가 없으면 적의 공격 앞에 방진이 버틸 방법이 없고, 적의 창칼을 향해 전진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없다.

 이 때문에 그리스시대에 방진을 구성한 병사는 오랜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친구, 또는 가족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일부 그리스 국가의 방진은 전원 동성애자로 구성된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구성원 간의 독특한 신뢰야말로 방진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유럽발 금융위기라는 악재를 상대하느라 수급이 꼬여버렸는데 김정일 사망이라는 또 다른 악재가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행동은 재료와 뉴스를 무리하게 예측하려 하지 말고 기업의 가치를 보고 행하는 장기 투자라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하지만 어떤 위기가 나타나더라도 주가가 적정 수준까지 회복하기 전에는 주식을 절대 팔지 않는 근성이 없다면 장기 투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주식을 들고 갈 자신도 없으면서 장기 투자의 성과를 노리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규모를 알 수 없는 적에 맞서 방진을 구성하는데, 자신의 옆에 있어 줄 동료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좀 더 프리미엄을 지불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구하겠는가, 아니면 적을 보자마자 도망갈 수도 있는 오합지졸을 싼값에 구하겠는가?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경기가 나빠지고 금융시장에 경색이 오더라도 버텨줄 만한 기업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불확실성 때문에 주가가 하락한 기업을 저가에 매수하려 한다면 ‘기업의 가치가 싼 주식’이 아닌 ‘기업의 가치를 신뢰할 수 있는 비싼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제대로 된 장기 투자라 할 수 있다. 언제 도망칠지 모르는 싸구려 가치를 매수하는 전략은, 단기적인 주가 되돌림 현상을 노린 단기매매로 한정해야 할 것이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어상담1센터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