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시험에 인문학 문제 왜 나왔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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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에 대해 논하시오.”

 대학 사회학과의 기말고사 문제가 아니다. 한국 최고의 경제 엘리트가 모인다는 한국은행의 2012년 신입행원 논술 문제다. 가족관·결혼관 등에서 나타나는 세대 간 차이에 대해 쓴 지원자가 다수 있었다고 한다.

 한은은 최근 1차 서류전형,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시험을 거쳐 52명의 합격자를 확정했다. 서류전형에는 4000여 명이 몰렸고, 이 중 1000명 정도가 통과했다. 400점 만점의 필기시험은 전공학술(200점)·전공논술(100점)·일반논술(100점)로 구성됐다.

전공학술은 경제학·경영학·법학·통계학·전산학 등 5개 전공에 대한 객관식·주관식 문제를 푸는 시험이다. 전공논술도 국제 자본 이동(경제학) 등 전공 지식이 있으면 답할 수 있는 주제가 나왔다. 수험생을 가장 애먹인 것이 바로 일반논술이다. 인문학적 소양 없이는 답하기 힘든 주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답안지도 B4 용지 3장이 주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전공 공부에만 함몰되다 보면 기본적 소양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사고의 폭이 넓고 다양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 지난해부터 일반논술 시험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경제만 잘 안다고 한국은행에 들어가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신입행원 중에는 경제·경영학을 복수 전공했지만 원래 전공은 영문학인 합격자도 포함됐다. 한은의 이런 변화는 지난해 4월 김중수(사진) 총재가 취임하면서 본격화했다. 김 총재는 평소 “이공계의 기초가 ‘수·물·화(수학·물리·화학)’라면 인문계는 ‘문·사·철(문학·역사·철학)’에 대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직원에게 “경제 현상은 물론 시사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자주 한다고 한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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