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측 위원 9명 보이콧 … 이익공유제 일단 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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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곽수근 서울대 교수, 김제박 솔빛아이텍 대표, 정위원장, 조세환 웰섬 대표, 이혜경 피엔알시스템 대표. 이날 회의에는 이익공유제 도입 강행에 반대하는 재계위원 9명이 불참했다. [김태성 기자]

13일 오전 동반성장위원회 10차 본회의가 열린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 회의장. 전체 위원은 25명이지만 이날 좌석은 14개만 마련돼 있었다. 전날 전국경제인연합의 불참 선언에 따라 대기업 측 위원 9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중소기업 측 위원 9명과 공익위원 4명(2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 정운찬 위원장만의 ‘반쪽 회의’가 열렸다.

  이어진 동반위 1주년 기념식에서도 어색한 상황은 이어졌다. 기념사에 나선 정 위원장은 사무국에서 미리 마련해 놓은 원고를 물리치고 “어젯밤 새로 쓴 기념사를 읽겠다”고 밝히며 대기업을 향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동반성장이 구호에 머물거나 대기업의 시빗거리로 전락해선 안 된다”면서 “지금이야말로 교체되지 않는 경제 권력 대기업 총수들의 사회적 책임과 헌신, 희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 대기업’ ‘소탐대실’ ‘납품가 후려치기’ 등 강도 높은 표현이 동원됐다. 내빈으로 참석한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시종 굳은 표정이었다.

  사회적 합의로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이뤄보자고 출범한 지 꼭 1년. 동반위 한 돌 기념식은 이처럼 파행과 불협화음으로 점철됐다. 갈등의 불씨는 이날 본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된 ‘이익공유제’였다. 연초 정 위원장이 제기한 뒤 숱한 논란을 부르다 한동안 잠복했던 이슈다. 전경련은 전날 “충분히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이익공유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회의 참석을 보이콧했다. 그러나 동반위는 “일곱 차례 실무회의를 열었고 마지막 회의에서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13일 반쪽 회의의 결론은 ‘일단 유보’다. 대기업, 중소기업, 공익 각 2명의 위원으로 소위원회를 만들어 좀 더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이윤을 협력사인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개념이다. 동반위는 실무위원회를 거쳐 크게 세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대기업과 협력사가 목표이익을 합의해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이익을 배분하는 목표초과이익 공유제와 ▶판매수입 공유제 ▶순이익 공유제 등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명분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이철행 기업정책팀장은 “초과이익 공유는 한마디로 대기업의 이윤을 정당하게 보기보단 협력사를 ‘후려쳐서’ 거둔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판매수입 공유나 순이익 공유는 손실이 날 경우 분담해야 하고 위험도도 높은데 어느 중소기업이 참여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재계는 대신 현재 일부 시행되고 있는 ‘성과공유제’ 확산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원가 절감 등 프로젝트별로 공동으로 노력한 뒤 나오는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익 자체의 배분이 아니라 특정 성과에 대한 보상이란 점에서 이익공유제와 차이가 난다.

  동반위는 일단 타협을 시도할 계획이다. 소위원회에 참여하는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무엇보다 사적인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 자체에 대한 대기업들의 거부감이 큰 것 같다”면서 “이를 ‘협력이익 배분제’ 등으로 순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갈등이 정 위원장과 재계 간 ‘자존심 싸움’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또 다른 안건이었던 3차 적합업종 선정도 순탄치 못했다. 동반위는 도시락·송배전 변압기 등 5개 품목에 대해 대기업에 ‘사업 축소’를 권고하는 등 38개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했다.

글=조민근·최선욱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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