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김장철이다. 집사람에게 끌려 장을 보러 갔더니 나처럼 자원봉사, 혹은 강제 동원된 남편들이 아내의 지휘에 따라 김장거리들이 잔뜩 담긴 수레를 끌고 마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편해져서 언제든 원할 때 김치를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겨울맞이 김장은 중요한 연례 행사다.
나와 굴: 마크로밀 코리아 주영욱 대표
김장을 담글 때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가전비법과 재료를 이용하는 집이 꽤 많은데, 우리 집의 경우에는 굴을 듬뿍 넣는 것이다. 굴을 많이 넣은 우리 집 김치는 깊고 시원한 맛이 난다.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불릴 만큼 완전식품이어서 비타민·철분·칼슘 등 각종 영양분과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하니, 김치의 영양가 향상에도 딱이다. 어릴 적에 집에서 김장을 담그는 날이면 어머니는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아버지와 아이들 앞에 김치 양념으로 버무린 굴무침을 갓 담근 김치와 함께 한 상 차려 내시곤 했다. 김장 날에만 맛볼 수 있는 이 소중한 별미를 먹으면 입안이 천국이 되었다.
오늘 우리 집에서도 김장을 했다. 결혼하고서도 한참 동안 어머니표 김장 김치를 배달 받아 먹곤 했는데, 어머니가 연세가 드셔서 힘에 부친다고 선언하신 몇 년 전부터는 집사람이 그 비법을 전수받아 직접 김장을 담그고 있다. 아직도 나는 어머니의 김장 김치가 그리울 때가 있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금은 바람으로만 남아 있다.
집사람이 옛날처럼 김치 양념으로 버무린 굴무침에 새 김치를 곁들여 상을 차려줬다. 늦가을 차가워지는 바다에서 온 신선한 ‘바다의 맛’이 상큼한 새 김치와 잘 어울려 휴일 점심을 꿀맛으로 만들어줬다. 이 메뉴에 막걸리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게으른 남편의 약간의 노력봉사는 넘치는 보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