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일본 제조업' 진출 공세로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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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 제품에 대한 수입선다변화 조치가 해제되고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서 한국에서의 사업 여건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와 양국간 자유무역지대 논의 등도 일본 기업을 자극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일본 업체의 공세가 본격화하자 국내 기업들은 긴장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 몰려오는 일본 기업들〓일본 업체들은 2~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의 홍보나 마케팅은 가급적 최소화하고 판매는 국내 업체에 맡기는 등 우회 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수입다변화 조치가 해제되고 한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자 전략을 바꾸고 있다.

전자.자동차.기계 메이커를 중심으로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가전 업체 소니는 초대형 TV.디지털 캠코더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판매지사를 본부로 격상하는 한편 일본인 지사장을 한국인(장병주 사장)으로 바꾸는 등 현지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張사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애프터서비스(AS)를 개선하기 위해 AS센터를 현재 30개에서 올해 안에 40개로 늘리고, 국내 업체와 마찬가지로 당일 AS를 목표로 삼고 있다" 고 말했다.

소니는 올 하반기부터 기업 이미지 광고도 할 예정이다.

마쓰시타전기.NEC도 한국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노트북 컴퓨터등을 파는 한국 후지쯔는 지난해 말부터 라디오 광고를 시작했다. 샤프.캐논.JVC 등은 올해 국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70~80%를 차지했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국내 직판을 위한 시동을 건 상태다. 도요타는 지난 3월 90억원을 출자해 한국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연말께 4종류의 렉서스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야스노 히데아키(安野秀昭)한국도요타자동차 사장은 "한국에서는 고급 차종인 렉서스 모델 판매에 주력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미쓰비시는 하반기나 내년 초에 스포츠형 레저차량(RV)등을 국내에서 시판할 계획을 세우고 서비스센터 설립과 국내 딜러 선정 등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공작기계.장비 업체의 시장 탐색도 활발하다.

마키노밀링머신이 서울 사무소를 설립한 것을 비롯, 세계 최대인 야마자키 마작.히타치 세이키.키타가와고쿄.오쿠마코퍼레이션.토요타머신 등 10여개 업체가 이미 국내 시장에 발을 들여 놓았다.

공작기계협회 정종현 전무는 "국내 공작기계 메이커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일본 메이커들은 복합 기능을 갖춘 특수 사양의 고가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본 기업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일본 기업인의 모임도 활성화되고 있다.

1백30여개 주한 일본 기업과 기업인의 모임인 서울재팬클럽(SJC.회장 오카다 지로 미쓰이물산 지사장)은 일본 기업인의 경영 애로 사항을 담은 책자를 내는 한편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 문화시장도 두드린다〓3차 문화 개방 이후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쉬리' 를 일본에 보급해 흥행에 성과를 올린 일본 종합문화기획사 아뮤즈는 지난 5월 한국에 현지법인(아뮤즈코리아)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지난 15~16일 부산에서 열린 '국제 록페스티벌2000' 에 샴세이드.슈퍼 슬럼프 등 일본 록그룹의 공연을 기획했다.

아뮤즈코리아 김용범(36)사장은 "일본 대중문화 수입과 함께 영화 등 한국의 대중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사업도 펼 계획" 이라고 밝혔다.

대중문화 기획사인 티어스뮤직도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페니실린' 등 일본 뮤지션의 한국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음반사 에이벡스트랙스는 한국 업체와 제휴해 일본 대중가수 등 연예인의 국내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음반 시장의 경우 아직까진 신중한 단계다.

소니뮤직코리아 관계자는 "일본어로 된 음반의 시중 판매가 허가되지 않아 일본 음반의 매출은 주로 연주 음악에 한정돼 있다" 며 "음반시장이 완전 개방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을 대비해 시장 조사와 한국인의 기호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업체들도 직접 공략 보다 국내 업체와 보급대행 계약을 맺고 간접적으로 나서는 상태다.

일본영화 수입대행 전문업체인 A.F.D.F 이상범 이사는 "일본 업체들은 쉘위 댄스.링 등 일본에서 성공한 영화들이 한국에서 히트하는 것에 고무돼 있지만 미국영화사처럼 직접 배급까지 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이라고 전망했다.

◇ 아직은 한국 시장이 어렵다는 일본〓일본 기업인들은 과거사 등 양국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국내 여론 동향을 살피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한 일본 기업인은 "정부 발주 공사에 일본 업체들이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경향도 보인다" 고 말했다.

대중문화 역시 음반 등 주요 상품에 대한 양국간 저작권 협상 등이 타결되지 않아 짧은 기간안에 국내 시장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업체들은 일본 기업의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맞서 단순히 시장을 지킨다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거꾸로 일본 시장에로의 진출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 연구원은 "국내 시장에 대한 탐색이 끝나면 일본 업체의 공략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 며 "국내 기업들도 품질과 가격에서 일본에 뒤지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일본 시장에 적극 진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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