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에이스들의 무리한 등판

중앙일보

입력

필자는 얼마 전 ‘올스타전에 바란다’라는 글에서 KBO는 말할 것도 없고 올스타전에서 그동안 행해졌던 선수들의 무성의한 태도와 올스타전에 대비한 구단과 코칭스텝진들의 개념없는 선수운용에 대한 나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 21일 마산과 23일 제주에서 벌어졌던 올스타전에서는 예년보다 조금이나 나은 면을 보여주었으나 빡빡한 스케줄과 각 리그 당 20명 밖에 되지 않은 멤버로 인해 선수들이 올스타전 이후의 후유증에 대해 다소의 우려를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스타전이 끝난 지 겨우 이틀 밖에 되지 않은 후반기 첫날인 25일,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현대 유니콘스의 정민태,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 SK 와이번스의 이승호가 바로 구단의 관리소홀로 인해 피해를 본 케이스다.

후반기 첫 경기라 대부분의 팀들은 기선제압을 위해 에이스를 총출동 시켰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그 배경을 짚어 본다면 아직도 우리나라 코칭스텝진은 선수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안된 듯 하다.

유니콘스의 정민태는 올스타전에 출장해 2경기 연속 선발 등판하여 3이닝을 던졌다. 그리고 이틀 만에 수원 홈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전에도 선발로 등판했으니 불과 6일 동안 3차례 선발 출장한 것이다.

아무리 한국 최고의 투수라 인정을 받고 있는 정민태라도 기계가 아닌 이상 무리였다.

결국 올시즌 자이언츠에게 유난히 강한 모습을 보여준 정민태였지만 4회 롯데 화이트에게 결승 3점홈런을, 6회 마해영 솔로홈런을 허용하는 등 7이닝 동안 2홈런을 포함 9피안타 5실점(5자책)으로 또다시 12승 고지에 오르는데 실패했다.

아무리 드림리그 1위 수성을 위해 에이스 정민태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손치더라도 정확한 체킹(checking)을 했더라면 투수진이 풍부한 유니콘스로서는 5일을 쉰 임선동 등 다른 카드를 내세우는 것이 제대로 된 투수운용이었다.

‘회장님’ 송진우는 좀 더 심한 경우다.

송진우 역시 올스타전 2경기에 출장해 총 4이닝을 던졌다. 여기에 등판 전날인 24일에는 회장이기 때문에 선수협 대표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목적으로 상경(上京)하여 기자회견을 가지고 25일 해태 타이거스전 선발 등판을 위해 광주로 이동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동계훈련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해 체력이 부담되던 송진우에게는 치명적인 스케줄이었다.

최악의 조건에서 등판한 송진우는 직구 스피드도 눈에 띄도록 저하되었고 또한 변화구 컨트롤도 제대로 되지 않아 평범한 투수로 전락, 타이거스 타자들에게 1승을 헌납하고 말았다.

2이닝 동안 1홈런 포함 6피안타 5사사구 5실점(5자책)으로 올해 들어 최악의 피칭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코칭스텝은 송진우에 대한 컨디션이나 체력을 제대로 파악했으면 선수의사에 상관없이 당연히 조규수를 선발등판 시켰어야 했다

와이번스의 이승호는 고졸 신인이다. 따라서 정민태, 송진우 보다 몸 관리에 더 더욱 헛점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승호 역시 올스타전 2경기에 출장 4이닝을 던진 상태였다.

이승호 역시 4와 1/3이닝 동안 9피안타 6실점(6자책)을 기록, 또다시 패전의 멍에를 썼다.

근래에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시즌 초반의 스피드가 확연히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예리한 커브의 각도마저 무뎌진 상황에서 제대로 쉬지 못한 이승호에게 승리하길 바란 건 애당초 강병철감독의 무모함이었다.

에이스는 다른 투수와 달리 상징성을 갖는다.

각 팀 마다 에이스가 등판하는 경기는 거의 승리한다는 생각으로 소속팀의 선수들은 자신감과 함께 안정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그런데 에이스가 패하게 되면 자칫 연패로 빠져 들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에이스는 몸관리를 잘해야 하며 또한 주위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25일 경기에서 보여준 몇 팀의 개념없는 투수운용에 선수들은 선수대로 구단은 구단대로 소득은커녕 향후 경기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번 경기를 본보기로 삼아 향우 이런 일이 없도록 모든 구단은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하겠다.

※ 신종학 - 프로야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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