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목숨이 사람보다 중요” …‘팬택 신화’ 박병엽 돌연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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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6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표명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그는 “휴식을 갖고 싶다”며 이유를 밝혔다. [연합뉴스]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자기가 세운 팬택을 떠나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박 부회장은 6일 서울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휴일 없이 일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많이 피로하고, 체력적으로 감당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올해 말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서 휴식을 갖고 싶다”고 밝혔다. 1991년 직원 6명과 무선호출기(삐삐) 제조업체 팬택을 세운 지 정확히 20년 만이다. 박 부회장의 연말 사퇴 선언은 내년 3월 말 채권단으로부터 받기로 한 10%의 스톡옵션을 포기하는 결정이다. 다만 “갖고 있는 주식우선매수 청구권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사람 목숨에 기업 목숨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요즘 같은 때라면 기업 목숨이 사람 목숨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죽고 없어도 팬택 사옥에 깃발은 펄럭여야 하지 않겠나”라며 회사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비상 매뉴얼을 가지고 경영자 유고 시에 대비한 훈련과 의사결정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차기 경영진은 채권단이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경영자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만큼 경영권 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회장이 갑자기 사퇴 선언을 한 배경에는 채권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이 주변의 해석이다.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서는 연말로 만기가 다가온 5700억원 규모의 채권을 해결해야 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산업·우리은행 등 워크아웃을 주도한 채권단이 보유한 3400억원은 만기 연장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신협 같은 일반 채권자로부터 받은 대출 2300억원까지 갚아줘야 하느냐에 대해 채권단 내부에서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팬택 관계자는 “일반 채권은 자체적으로 갚을 방안을 마련해 문제가 없다”며 “채권단 일부가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경영권 문제도 걸려 있다. 워크아웃에서 벗어나면 채권단은 갖고 있는 주식을 팔 수 있다. 이럴 경우 지분이 전혀 없는 박 부회장은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가 지분 10%에 대해 갖고 있는 주식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려면 1000억원 정도 필요하다. 내년에 추가로 받기로 한 스톡옵션을 행사하는 데도 돈이 들 수 있다. 박 부회장은 최근 채권단에 보증 등을 통한 경영권 보장을 요청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박 부회장은 “보장 안 되면 사퇴”라는 배수진을 친 셈이다. 실제로 이날 회견에서도 그는 복귀 가능성에 대해 “놀다가 심심하면 올 수도 있고 하지만, 너무 단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여운을 남겼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워크아웃 졸업 절차가 순조로운 상황에서 박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올해 가급적이면 워크아웃 졸업을 시키기 위해 계속 협의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퇴 선언을 해서 놀랐다”며 “이번 주 안에 박 부회장과 협의해 원만한 결과를 내놓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20년 전 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팬택 자본금을 마련했다. 창업 후 1년 뒤 올린 매출은 28억원에 불과했다. 그의 승부수는 휴대전화 사업 진출. 97년 제품 생산을 시작한 뒤 4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2005년에는 매출 4조8000억원의 세계 7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팬택은 2007년 4월 워크아웃(기업개선 절차)에 들어갔다. 박 부회장은 4000억원대의 지분을 내놓고 백의종군했다.

 그럼에도 박 부회장의 최근 성과는 전성기에 못지않았다. 올 3분기에만 매출액 8275억원, 영업이익 540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매출은 40%, 영업이익은 146% 급증했다. 스마트폰에 올인한 것이 시장 상황과 맞아 떨어졌다. 팬택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17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 행진이다. 올 연말에는 워크아웃 졸업도 기대된다.

김창우·정선언 기자

팬택은

1991년 3월 설립
92년 4월 무선 호출기 출시
97년 5월 휴대전화 생산 개시
2001년 11월 대큐리텔 인수
2005년 7월 SK텔레텍(스카이) 인수
2007년 4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개시
2010년 4월 국내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리우스’ 출시
2011년 12월 워크아웃 졸업 예정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팬택계열 대표이사부회장
[現] 팬택 대표이사부회장
[現] 팬택&큐리텔 대표이사부회장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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