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모든 경제위기 터널 끝은 호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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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세계 최강국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우리의 부러움을 샀던 이탈리아와 프랑스마저 국가부도 위기의 벼랑 끝에 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모두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소식이다. 게다가 경제전문가는 내년 경제전망에 자신 없는 모습이고, 기업은 내년 예산을 어떻게 짜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디서 또 다른 위기라도 터지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해진다.

  사실 우리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산다. 미래의 불확실성 탓에 늘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좋지 않은 징후가 갑자기 다발적으로 발생하면 심리는 더욱 위축된다. 또 비관론자의 말에 귀 기울이게 돼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소비와 투자는 침체돼 경제가 나빠지고, 많은 사람의 삶은 피폐해진다. 비관론자의 말이 현실로 돼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지혜와 용기라는 게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겨울이 있으면 여름이 온다. 또 추위가 지나가면 더위가 찾아온다. 이런 순환의 이치는 아마도 지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경제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경제위기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김없이 경제 호황으로 대체됐다. 그 과정에서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는 믿음과 지혜를 갖고 용기 있게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사람은 새로운 상류층으로 신분 상승을 하기도 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 적잖은 신흥 부자가 탄생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일본이 한국전쟁의 위기를 활용해 패전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역사적 사건도 그렇지 않은가. 삼성전자가 소니를 꺾고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가 된 것도 외환위기 이후 원화가치 절하가 만들어준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일본의 지도층은 보고 있다. 3년 전 금융위기가 발생해 원화가 달러당 1700원까지 절하되자 “이번에는 도요타자동차가 희생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하는 일본인을 만난 적이 있다. 요즈음 잘나가는 현대자동차를 보면 근거가 전혀 없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요타자동차뿐 아니라 많은 일본 기업이 엔고와 전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것에 비하면 한국 기업은 위기 속에서 승승장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유럽의 경제위기는 사실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회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주식과 아파트를 싸게 사서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차원의 기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세계의 경제강국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기회가 왔다는 얘기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미국과 유럽이 주름잡는 대서양시대가 가고 동아시아와 미국이 패권을 공유하는 태평양시대가 오고 있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지각변동의 전조현상이 적지 않다. 미국은 금융위기로 국력이 기울어지고 중국은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했으며 유로존에선 현재 재정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모두 그 증거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그렇게 많은 난관을 뚫고 정치색이 전혀 다른 두 명의 대통령이 연이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것도 우연한 사건이라고 보지 않는다. 새로 오는 태평양시대에 대한민국 위치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는 이렇게 중차대한 시점에 시대적 사명감이 있는지, 또 어떤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그 결과에 지도자들은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지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업가들은 용기를 내서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선진국가의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고 브랜드를 강화해 글로벌 챔피언이 돼야 한다. 정부 관료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미비한 제도를 정비하면서 한편으로는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 정치인은 좀 더 인내하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온 국민이 다 같이 합력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태평양시대가 도래할 때 대한민국은 그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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