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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는 받는 사람 입장 배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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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경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지난달 29일부터 오늘까지 부산 세계개발원조 총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회의는 2차 파리선언, 3차 아크라 어젠다에서 천명한 원조 효과 증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조를 받는 국가의 주인의식, 그 나라 정책에 맞춘 원조, 원조공여의 조화, 성과중심 관리, 상호 책임성 확보 등을 점검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다.

 한국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원조 공여국 모임(DAC)에 가입함으로써 명실 공히 원조 수혜국에서 선진 공여국 대열에 들어섰다. 해외 원조 규모도 2001년 2억64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1억620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201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0.25%수준인 30억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에서 보건의료의 비율도 23%(2009년 기준)까지 늘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보건의료 ODA는 병원 건축, 의료 장비 공여, 개발도상국의 보건의료인력 훈련 등 인프라 지원에 맞춰져 있었다. 이런 방식은 페루 같은 나라에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같이 전반적인 보건의료시스템이 취약한 곳에서는 의료인력 확보, 약품 공급, 병원 운영비 확보 등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성과를 보기가 어렵다. 설사 우리가 지원한 덕분에 의료기관의 수준이 올라가더라도 환자들의 의료기관 접근을 어렵게 하는 문화적·지리적·경제적 장애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건강 수준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보건의료 ODA는 인프라 제공과 동시에 적절한 프로그램이 수반돼야 한다. 보건의료 인력 훈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세계 질병의 25%를 앓고 있지만 의료인력은 4%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보건의료인력 양성 및 역량 강화는 시급한 과제다. 우리나라도 연수사업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의료인들을 초청, 대학병원 등에서 교육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육 과정이 때로는 지나치게 우리의 의료 환경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개도국의 의료 인력들이 한국적인 의료를 배우고 갈 경우 자국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신중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민간 부분의 해외 의료봉사도 활발해지면서 방학만 되면 너무 많은 단체들이 해외 의료 봉사를 간다. 이 같은 단기 의료봉사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진 등 특수 재난 지역에서만 이런 식의 봉사가 이뤄진다. 단기 의료 봉사는 의료의 질·포괄성·연속성·효율성·평등성이나 인간 중심의 진료라는 측면에서 필요한 조건들을 갖출 수 없다.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진료나 약품이 그 나라 국민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최근 일부 단기 해외진료팀이 해당 국가의 여건을 모르고 갔다가 임시 의사면허를 받지 못하거나 약품을 통관하지 못해 봉사 활동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아프리카와 같은 최저개발국이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에서 진료를 할 경우는 그 나라의 보건의료 법률에 맞추어 미리 준비를 하고 출발해야 한다.

 원조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것이지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남을 돕는 것도 적절한 전략과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이제는 한국도 원조 공여국으로서 성숙한 자세를 가다듬고 효율적인 원조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겠다.

서경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