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운용 투명성 추진에 흙탕물

중앙일보

입력

투신운용사들이 법을 무시하고 자산 펀드평가를 자회사에 맡기려 해 펀드 운용 투명성을 위협하고 있다.

펀드운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말 관계법까지 고쳐 펀드에 편입된 주식 및 채권의 평가는 외부 전문회사(일반사무수탁회사)에 맡기도록 의무화했다.

◇ 관계법 개정〓지난해 개정된 증권투자회사법 42조는 투신운용사가 고객 돈이 든 펀드를 운용할 때 어떤 주식이나 채권을 살 것이냐는 투신운용사가 알아서 정하되, 편입된 주식.채권의 가격에 대한 평가는 일반사무수탁회사로부터 받도록 했다.

대신 일반사무수탁회사는 상법상 주식회사로 자본금 20억원 이상에, 전문인력 3명 이상을 갖춘 뒤 금감원에 등록하도록 했다.

제도를 이같이 바꾼 것은 투신사가 고객 돈을 제대로 운용했는지를 외부 기관으로부터 평가받게 해 투신 펀드운용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함이었다. 재벌계열 투신운용사가 부실 계열사에 돈을 퍼주는 행위를 차단하고자 목적도 있었다.

◇ 시행령 늑장과 파행 운영〓그러나 법을 개정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금감원과 재경부가 시행령 개정을 늦추는 바람에 일반사무수탁회사가 탄생조차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실상 모든 투신운용사들이 불법적으로 일반사무수탁업무를 겸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개정법이 지난 4월부터 시행돼 유예기간(2개월)이 끝난 6월부터는 모든 투신운용사가 펀드에 편입된 주식.채권의 가격 평가를 금감원에 등록된 일반사무수탁회사에 맡겨야 하나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아 등록된 일반사무수탁회사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재경부에 넘어가 있는 시행령은 투신운용사와 일반사무수탁회사간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제한규정을 두지 않아 대부분의 투신운용사가 자회사 형태로 일반사무수탁회사를 설립하고 있어 '투명한 펀드' 는 구호로만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 투신운용사들 너도 나도 자회사 설립중〓이미 대한투신은 암-텍(AM-TEC)이라는 일반사무수탁회사를 자회사로 설립했으며, 한국.현대.LG 등 다른 대형 투신운용사도 조만간 일반사무수탁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금감원 박광철 자산운용감독과장은 "국무회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시행령 개정이 늦어지고 있다" 며 "투신운용사가 일반사무수탁회사를 자회사로 설립하더라도 지분제한을 둘 예정이기 때문에 1백% 지배하는 회사가 되지는 않을 것" 이라고 해명했다.

◇ 어떤 문제가 생기나〓그러나 업계에선 대부분 투신사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일반사무수탁회사에 펀드재산 평가업무를 맡김으로써 과거와 같이 투신운용사가 운용과 평가를 겸하는 파행적 운영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채권전문가는 "투신운용사가 지배하는 자회사가 펀드 평가를 맡게 된다면 투신운용사에 유리하도록 주식이나 채권의 가격을 평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며 "이럴 경우 투신에 대한 고객신뢰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선 최소한 투신운용사가 일정비율 이상 지분을 소유한 일반사무위탁회사에는 자사의 펀드 평가업무를 맡길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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