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들 한국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대기업 엔지니어 金모(36)과장은 캐나다 이민수속을 밟고 있다.

명문 Y대 출신에 연봉 4천5백만원, 서울 강남에 34평형 아파트를 가진 속칭 '안정된 30대 중산층' 이지만 오는 9월 한국을 떠난다.

金씨는 "일류대 진학만이 우선인 자녀들의 교육환경과 승진에 목매는 직장생활에 신물이 난다" 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스스로 경쟁력이 있다고 여기지만 갈수록 답답하고 개선여지가 없어 보이는 여러 주변환경을 고려하면 그럴바에야 밖에 나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30대의 '한국 떠나기' 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취업이민자수는 올 상반기에만 3천6백23명으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이민이 급속히 늘었던 1998년 전체수(3천8백5명)에 육박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7천명을 넘어 지난해(5천2백67명)보다 33%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대졸 이상 학력을 주대상으로 하는 미국 단기취업비자(H-1b)도 상반기에 8백6건이 발급돼 98년 한해 건수(9백46건)에 접근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사회 각 부문의 허리역할을 하는 30대의 고학력.고소득 엘리트 계층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비운 자리에 업무 공백, 기술 해외유출 등 후유증도 나타나고 있다.

대형 정보통신업체인 S사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전산파트 주력 엔지니어 등 30대 '알짜' 사원 10여명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이민길에 올라 인력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이주공사.○○네트워크 등 이민알선회사엔 30대의 상담신청이 전체의 70~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밀려들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이민정보를 교환하는 개인 홈페이지 개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한 홈페이지는 벌써 40만명이 방문해 정보를 얻어 갔다.

외교통상부 한봉 재외국민이주과 담당관은 "취업이민자는 1960년대에 태어난 30대가 대부분으로, 미주권의 고급인력 유치정책 확대와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한국이주공사 임삼렬 사장은 "그동안 이민을 준비한 사람의 5%만 나갔다고 보면 된다" 며 "잠재적 이민자는 그만큼 엄청나다" 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李那美)씨는 "교육붕괴와 과열경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답답한 사회분위기에서 촉발된 한국사회에 대한 실망감이 역동성 강한 고학력의 30대 직장인들의 등을 떼밀고 있다" 고 진단했다.

기획취재팀〓이상렬.서승욱.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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