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총파업] 파업전야…벼랑끝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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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총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3차 협상을 벌인 노·정은 실무위원회를 구성, 밤샘 협상을 계속하며 진통을 겪었다.

10일 오후 11시35분쯤 3차 협상 테이블에서 빠져나온 정부와 금융산업노조는 노조와 정부측이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금융산업 발전에 관한 현안에 대해 본격 논의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결론을 내겠다고 10일 밝혔다.

노조는 "협상이 결렬될 때 총파업에 들어가겠다" 며 이날 자정으로 예정했던 파업선언을 일단 협상진행 중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

◇ 자정넘기며 분위기 반전〓파업 불참 은행의 자금이 이탈해 되레 구조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시장의 힘이 노조의 막판 파업 돌입에 일단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초유의 은행 파업사태를 앞둔 정부·은행·노조 모두 숨가쁜 하루를 보냈다.

정부는 노조와의 대화를 끈질기게 요구, 10일 오후 10시20분쯤 은행회관에서 3차 협상을 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어렵게 성사된 3차 협상은 노.정간 견해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새벽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오후 8시부터 은행회관 집무실에서 각각 문을 걸고 협상전략 구상에 들어갔다. 오후 10시10분 이용득 금융산업노조위원장이 협상장에 도착하면서 협상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러나 노·정 대표 모두 마지막 협상임을 의식한 듯 굳은 표정으로 협상테이블에 들어섰고 이에 따라 회의장 주변에선 아무래도 타결이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시작부터 나돌았다.

금융노조 대표들은 협상 시작 전 "주택·국민·기업·외환은행은 은행장들이 주도해 직원들의 전야제 참석을 막고 있다" 며 "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같은 조치부터 풀어야 할 것" 이라고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에게 요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협상 타결은 물건너 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호진 위원장은 "그런 일이 있다면 잘못된 것" 이라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금 이를 확인해 조치하기는 불가능하다" 며 협상 시작을 종용, 노·정은 일단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이후 협상장에선 간간이 고함이 오가기도 했으나 자정을 넘기면서 양측의 기세가 누그러졌고 정부의 양보안을 노조가 받아들일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 노·정 파업준비도 계속〓이날 13개 은행장들은 파업에 대비해 전산실에 경찰 배치를 요청, 1백여명의 경찰이 투입되기도 했다. 경찰은 노조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5~10명씩 사복차림으로 전산실에 진입했다. 노·정은 파업 전야제 개최를 놓고도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신경전을 펼쳤다.

노조측은 조합원 집결지를 서울 관악구의 S대, 동국대라며 역정보를 흘렸다. 명동성당과 연세대로 최종 집결지가 밝혀진 것은 오후 6시50분쯤. 이때는 이미 지방에서 올라온 노조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을 때였다.

정부는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정보망을 총동원, 노조의 파업전략 파악에 나섰다. 이미 H.J은행 노조위원장을 초강성, P은행 노조위원장은 강성 등으로 성향분석을 끝내 놓고 이들의 동향을 집중 점검하던 금감원은 오후 들어 이용득 위원장 등 노조집행부의 종적을 놓쳐 한동안 애를 태우기도 했다.

◇ 은행·노조 조합원 단속〓개별 은행들은 파업 불참 인원을 늘리려는 은행측과 한명이라도 동참 조합원을 더 확보하려는 노조측이 맞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설득작업을 벌였다.

전날 주택·국민은행에 이어 파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한빛·조흥·외환·서울은행까지도 일부 본점 직원들을 강당으로 동원해 형식상의 '파업 불참' 선언을 발표하고 나섰다. 사실상 모든 은행이 파업 불참 결의를 하게 된 셈이다.

이정재·신예리·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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