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못내는 벤처들 '여름나기 무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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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밸리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투자유치에 실패한 상당수 벤처들이 올 여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8월 괴담'' 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낮은 진입장벽 탓에 출혈경쟁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데 코스닥 진입요건은 강화하고 있어 기술과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벤처들이 무더기로 퇴출될 것이란 소문이다.

벤처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창업투자회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1백30여개의 창투사 중 30% 정도는 투자금 회수가 안돼 자금난에 몰리고 있다.

벤처 인큐베이팅 업체인 이네이블의 김웅겸씨는 "한때 30~40배를 웃돌던 투자 프리미엄은 5~10배로 뚝 떨어졌다" 며 "코스닥 등록이 확실한 업체에만 자금이 몰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고 전했다.

고개를 드는 벤처의 노사분쟁으로 강남지역 노동사무소는 골치를 앓고 있다. 장밋빛 꿈을 안고 벤처행(行)을 택했다가 과중한 업무와 낮은 임금, 여기에다 당초 약속했던 스톡옵션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때문이다.

A정보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 고발됐고 B사는 사장과 직원간에 초과근무 수당을 놓고 주먹을 휘둘러 형사고발된 상태. 또 C테크의 경우 경영악화로 3개월째 직원들의 급여를 지불하지 못해 20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회사를 빠져나갔다.

한발 앞서 코스닥에 진입한 일부 업체들도 구설에 싸여 있다. 현금이 곧 바닥난다는 소문에다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어 주가까지 폭락한 한 업체는 벤처업계에서 왕따당한 대표적 케이스. 지난 연말 쏟아져 들어온 자금을 대표이사가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은 데다 값비싼 외제 승용차.보석류를 구입하고 여성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자금을 조달할 길이 막혀버렸다.

엔젤투자클럽의 분위기도 굳어지고 있다. D사 대표는 "최근 모임에서 될성부른 벤처와 전망없는 기업을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며 "살생부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명단도 벤처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고 전했다.

그는 "미국에는 닷컴 기업의 운명시계를 게재하는 잡지와 부도난 닷컴기업의 인터넷 주소들을 모아놓은 무덤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며 "새로운 탈출구를 빨리 찾지 않으면 테헤란 밸리에도 8월 괴담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반면 바람직한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선발벤처를 헐뜯는 소문이 사라졌다. 공멸(共滅)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벤처들은 다음과 새롬기술, 그리고 최근 코스닥에 등록한 옥션의 주가에 소리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다음의 조은형씨는 "대장주들이 살아나야 신생벤처도 활로가 뚫릴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 이라며 "요즘 벤처기업가와 투자자들의 격려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고 소개했다.

연구개발에 승부를 거는 벤처도 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업체인 프리챌은 신제품 개발을 앞두고 핵심 개발인력들을 외부 기관과 오프라인 대기업에 연수를 내보냈다.

전제완 대표는 "전자상거래를 하려면 현실의 유통흐름을 모를 경우 올바른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 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위원회의 등록 요건 강화에도 벤처들은 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레떼컴 김경익 사장은 "기업마다 중요한 전환점이 있는데 코스닥 등록요건을 지나치게 경직시키면 벤처들이 성장기회를 놓칠 수 있다" 고 말했다.

네띠앙의 홍윤선 사장도 "인터넷 기업들이 당장 흑자 내기가 쉽지 않다" 며 "코스닥 등록 기회를 놓치면 자금난에 봉착해 헐값에 팔리거나 외국계.대기업계 벤처만 판칠 가능성이 크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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