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부실 뇌관 터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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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버냉키 미 FRB 의장(左), 김중수 한은 총재(右)

대출받은 이가 원금 갚을 능력이 모자라 현재 이자만 내고 있는 이른바 ‘부채상환능력 취약대출’. 이런 대출의 만기가 올해와 내년에 몰려 있어 가계대출 부실화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비은행권 가계대출 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등 가계대출의 질이 급격히 악화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국은행은 30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원금상환 중인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지난해 말 17.7%에서 올 6월 말 현재 22%로 크게 커졌다고 밝혔다. 2005년 이후 은행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이 본격적으로 끝나고, 여기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전체 가계부채 축소라는 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다. 하지만 가계 입장에서는 빚을 갚는 부담이 갑자기 커지는 것이다. 보고서는 “은행권의 원리금분할상환대출의 거치기간이 최근 본격 종료하면서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이 급작스럽게 커져 대출 부실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거치기간 종료 이후 연체대출이 급격히 늘어났다. 가계의 채무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한은이 2009~2011년 상반기 중 만기 도래된 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 중 연체대출 1051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51.1%는 만기가 도래된 달 연체가 발생했다.

 저소득층,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 비은행권 대출 등 취약대출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취약대출 건수는 6월 말 현재 전체 주택담보대출 100만여 건의 26.6%에 달했다. 게다가 이러한 취약대출의 34%는 올 하반기부터 2012년에 만기가 몰려 있다. 이들 대출은 주택가격이 급락하거나 금리가 상승하는 등의 충격이 발생하면 원리금 상환부담을 견디지 못해 보유 주택을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한은은 “수도권 주택가격이 대형 주택을 중심으로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단기간에 크게 떨어진다면 과다차입 가구의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부실화 위험이 커지고 이로 인해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급증하는 비은행권 가계대출도 부담이다. 2010~2011년 상반기 중 비은행권 증가율은 17.9%로 은행 증가율(8.5%)을 크게 웃돌았다. 동일한 신용등급이라도 비은행권 대출금리(24.4%)는 은행(9.8%)의 2.5배에 달했다. 또 은행과 비은행권으로부터 동시에 대출받은 다중채무자가 늘어남에 따라 비은행권에서 발생한 부실이 은행권으로 전이될 위험도 커졌다. 지난 6월 말 현재 비은행권에도 대출이 있는 은행권 다중채무 연체율(0.8%)은 은행권 대출만 있는 경우(0.3%)보다 높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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