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시대 남북경협] 3. 특별신탁등 해외 돈줄 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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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경제협력이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투자보장 및 결제방식 등에 관한 제도적 인프라와 함께 경협자금의 확보가 필수 요건이다.

특히 제도적 인프라 구축은 기업들이 돈을 떼일 걱정없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선결과제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다음 달부터 시작될 경제분야 당국자회의에서 이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 이라고 밝혀 현재 정부내에서 다각도로 대안을 찾고 있음을 시사했다.

李장관은 그러나 투자보장협정 등 이같은 제도를 갖추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측의 경협논의를 위해서는 곧 남북 경제공동위원회가 구성될 전망이다.

◇ 남북이 우선 협의해야 할 것〓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 방지협정의 체결이 최우선 과제다. 투자보장협정이란 남.북한 기업이 서로 상대방 지역에 투자하는 경우 원금을 보장받고 과실(果實)을 송금할 수 있는 안전판을 뜻한다.

북한은 지난해 외국인투자 관련 법규를 개정하면서 "해외 조선동포들도 공화국 영역 안에 투자할 수 있다" 는 부분을 새로 삽입하는 대신 "공화국 영역 밖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 동포에게도 적용된다" 는 기존 조항은 삭제했다.

박석삼 한국은행 북한경제팀 조사역은 "북한의 외국인투자법 상 '동포' 의 범위가 축소됨에 따라 대북투자에 참여하는 우리 기업들이 북한법 체계내에서 가지는 입지가 모호해 졌다" 며 "이는 투자보장협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 지적했다.

이중과세 방지협정은 기업들이 세금을 남.북한에서 두번 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등 국제기준이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과제는 직교역을 위한 대금결제제도의 마련이다. 남북은 이미 1992년 9월의 '남북 교류.협력 부속합의서' 에서 청산결제(淸算決濟)방식에 합의한 바 있다.

청산결제방식이란 매번 거래할 때마다 결제하지 않고 청산결제은행에 설치된 청산계정에 수출과 수입 대금을 기록해 놓았다가 일정 기간마다 잔액만 결제하는 것으로, 과거 동.서독이 통일에 앞서 시행했던 제도다.

그러나 무역대금결제 외에 임가공료.투자자금 등의 송금은 환어음을 이용한 직접 결제방식을 이용할 수 밖에 없어 환결제 방식도 일부 도입될 전망이다.

◇ 남한의 경협제도도 손질해야〓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은 "남북 경제협력에 관한 국내 제도는 그동안 통제수단의 성격이 강했다" 며 "이제 경협을 촉진하는 서비스 수단으로 대폭 수술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방북절차 간소화▶대북 임가공 제품의 형식 승인제도 개선▶통관절차 간소화▶대북 반출 규제 완화 등이 시급한 상황이다.

임가공 사업의 경우 북한산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하기 위해선 형식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공장심사 등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또한 공장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PC가 전략물자로 지정돼 있어 대북 반출이 어렵다는 점도 업계의 불만사항이다.

◇ 재원 조달 방안〓남북 경협을 위해 사용 가능한 재원으로는 ▶남한 정부의 직접지원▶민간기업의 투자▶국제기구의 자금제공▶북한의 대일 청구권 자금 등이다.

이중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정부 자금은 ▶남북협력기금 2천억원▶대외경제협력기금 7천억원▶한국국제협력단자금 4백억원 등 합쳐봤자 9천여억원에 불과하다. 정부는 남북경협기금을 5천억원 증액할 방침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다자간 국제협력을 통해 북한 경제재건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형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이나 국제금융기구의 장기.저리의 양허성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남한이 지원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등 국제금융기구 가입이 최선책이지만, 미국.일본 등의 동의와 복잡한 가입절차 등을 감안하면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기에 앞서 과거 팔레스타인 등이 지원받은 국제금융기구들의 특별신탁기금을 활용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별신탁기금은 주요국이 국제금융기구에 예탁해 놓은 자금을 기술지원 재원 등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기금 예탁국의 동의만 얻으면 쓸 수 있다. 팔레스타인 외에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지 않은 동티모르.보스니아.코소보에 대해 국제사회가 이런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 전례가 있다.

◇ 대남(對南)투자도 가능〓북한기업들의 대남투자도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14일 중앙통신을 통해 "1999년 중 1백여건의 과학기술적 성과를 거뒀으며, 이중 50여건은 세계적인 수준" 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발언의 진위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인공위성 발사 등 일련의 사건을 봤을 때 북한의 기초과학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기술을 갖고 있는 북한기업이 남한기업과 합작형식으로 남한지역에 벤처기업 등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 경우 남북 합작기업은 거래소.코스닥 등 남한 증권시장에의 상장.등록을 통해 기술개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경협 재원을 마련하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박석삼 한국은행 조사역은 "사전에 북한기술의 상업화 가능성과 북한기업의 대남 투자제도 등에 관해 남북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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