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폐업 결의까지] 의사들 "백약이 무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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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에 더이상 기대할게 없다" 고 말한다. 정부는 강온 양면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다.

전국 병.의원 의사들과 전공의들은 17일 비상총회를 열고 99%가 폐업강행에 표를 던졌다. 의대 교수들도 정부의 성의있는 조치가 없으면 23일 즉각 사퇴하겠다고 결의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16일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재까진 별 효험이 없다. 이미 동네병원은 의사협회나 의쟁투 집행부가 설령 폐업유보를 결정한다 해도 따르지 않을 상황이다. 의사협회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사승언(史承諺)대변인은 "정부의 대책은 새로운 것이 없다" 고 일축했다.

◇ 폐업 배경〓의사들의 투쟁은 지난해 11월 정부가 약품의 마진(30.7%)을 일시에 걷어내는 대신 의보수가를 12.8% 올리면서 시작됐다. 낮은 의료보험 수가 때문에 의사들의 고유한 기술인 진찰료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약값에 붙어 있던 마진으로 병.의원을 유지해 오던 의사들은 강력 반발했다. 의사들은 그해 11월 30일 수가 추가인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정부는 수가를 6% 추가 인상했다.

의약분업이 목전에 닥치자 의사들은 진료권과 생존권으로 눈을 돌렸다. 의사들은 수가만이 아니라 추가 요구조건들을 내걸었다.

▶약사의 임의조제 금지▶의약품 전면 재분류▶처방료.조제료 현실화▶약화사고 책임소재 명문화▶의료전달체계 확립 등 10개항이다.

이를 위해 4월 초 3일간의 집단휴진을, 6월 4일에는 3차 장외집회를 갖더니 급기야 폐업이라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의사들이 의권상실의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게 약사의 임의조제 금지다. 조제권한만 가진 약사들이 사실상 진단과 처방까지 함으로써 의사 고유의 '진료권' 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약사의 임의조제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조제의 개념에 대한 해석상 차이가 있다. 몸살 감기약을 요구하는 환자에게 약사들이 일반약을 섞어 팔면 이는 조제라고 주장한다. 반면 약사들은 일반약을 섞어 팔든, 하나만 팔든 일반약은 약사의 고유권한이며 섞어파는 것은 판매이지 조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 정부 입장〓정부는 18일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내놨다. 당근은 약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난색을 표명해 왔던 약사법 개정을 의약분업 시행 후 3~6개월 동안 문제가 있으면 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임의조제 금지, 대체조제시 의사의 사전동의, 약화사고 책임문제, 의약품 분류 등 민감한 사항을 담고 있다.

반면 폐업금지명령 위반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영업정지조치하고 형사처벌까지 하며 의사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또 전공의들이 수련과정에서 진료를 거부하면 해직요건에 해당돼 자동적으로 입영하는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은 어떤 식으로든 의료계를 끌어안아 보려는 가장 전향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때를 놓친 측면이 강하다. 의료계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진도가 나간 시점이다보니 '약효' 가 떨어진다.

◇ 폐업 전망〓김재정(金在正)의협회장은 "의사를 의료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일절 거부한다" 면서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폐업강행을 선포할 예정" 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고민끝에 세제.금융 지원 등 가장 '영양가' 있는 대책을 내놨지만 의료계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당분간 내놓을 카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로선 폐업은 강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얼마나 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의료계는 무기한을 주장하고 있지만 무한정 끌고 가긴 힘들 것이다. 중소병원의 경우 3일만 문을 닫아도 경영에 심각한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업이후 3~4일 시점이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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