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ro 2000] 이탈리아·벨기에전 관전평

중앙일보

입력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B조 예선 2차전 경기.

먼저 이탈리아 진영의 1차전 터키전과 다른 면모를 살펴보자면 지난 경기에서 왼쪽 윙백의 자리를 맡았던 말디니를 왼쪽 사이드 어태커의 자리에 전진 배치시키는 한편, 왼쪽 윙백에 99/00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최고의 수비를 보여주었던 선수 가운데 하나인 유벤투스의 율리아노를 배치하며 노련한 말디니를 이용한 미드필드에서의 게임 조율을 염두에 둔 것이 특징적이었다.

터키전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는 경기 시작과 함께 활발한 움직임으로 경기를 주도해 나갔다. 초반 오른쪽 사이드 어태커로 나선 잠브로타의 집요한 우측 돌파가 진행되는 가운데 공격진의 가벼운 몸놀림을 보인 이탈리아가 시작 6분만에 귀중한 선제 골을 터뜨린다.

알베르티니가 벨기에 진영 오른쪽에서 프리킥한 볼을 토티가 헤딩으로 성공시키며 이탈리아는 기분 좋게 경기를 풀어나가게 된다.

이후 다소 느긋해진 이탈리아가 수비 쪽에 더욱 많은 비중을 두면서 빌모츠와 음펜자를 중심으로 벨기에의 거센 반격이 계속되지만 이탈리아 골키퍼 톨도의 잇따른 선방과 이탈리아 수비진의 견고한 밀집 수비벽에 번번히 차단 당하면서 동점골을 올리는데는 실패한다.

후반 들어서도 비슷한 경기 양상을 보여주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반 비교적 많은 기회를 허용했던 이탈리아 수비진이 미드필드부터 더욱 타이트한 압박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에 전반 실점 이후 계속해서 이탈리아 골문을 두들기던 벨기에는 데프랑드르의 활발한 왼쪽 측면 공격과 미드필드에서의 신속한 방향 전환으로 전반전에 나타난 문제점을 어느 정도 만회하는 듯한 플레이를 펼쳐준다.

하지만 후반 중반이 지나면서 길목길목 노련하게 포진한 이탈리아 수비진의 방어 벽에 막히면서 벨기에 공격의 칼끝은 무뎌만 가고 더군다나 공격의 템포 조절에 문제점을 드러내며 제대로 된 공격 기회조차 만들지 못하고 만다.

이에 역공을 노리던 이탈리아가 후반 21분 산만해진 벨기에 공격을 도중 차단하면서 피오레가 인자기의 월패스를 통해 받은 볼을 아크 정면에서 중거리슈팅으로 골네트를 갈라 승부에 쐐기를 박게 된다.

결국 벨기에는 안방에서의 경기에서 참패는 있을 수 없다는 듯 만회해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찬스와 연결될만한 전진패스보다는 무의미한 횡패스만을 남발하는 등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끝내 굳건히 잠긴 이탈리아의 골문을 열지 못하고 도리어 기민한 움직임과 정확한 패싱이 돋보인 이탈리아에 추가 실점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이렇게 경기가 끝이 나면서 이탈리아는 8강을 위한 티켓을 거의 손에 넣게 되었고 벨기에는 이제 마지막남은 터키전의 승리가 꼭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종합하자면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경기는 한마디로 바늘 구멍하나 찾아볼 수 없는 탄탄한 방패와 무엇하나 자르기 힘든 무딘 칼날을 가진 창과의 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노련한 수비를 바탕으로한 경기 운영과 기회가 포착되었을 때 이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빠른 판단과 기민한 움직임, 그리고 이어지는 정확한 패스는 이탈리아 축구의 인상적인 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반면 벨기에는 빌모츠의 부지런한 볼 배분, 음펜자의 빠른 스피드, 데프랑드르의 측면 공략이 그런 대로 훌륭했지만 결국 이러한 부분적인 특징들이 조합되지 못한채 산만히 나열되면서 하나의 결실을 엮어내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공격의 비효율성이 오늘 벨기에 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고 생각되며, 반대로 때를 기다릴 줄 알고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이탈리아의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경기운영이 돋보인 한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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