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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덤비고 바꾼 잡스 … ‘한국의 잡스’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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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저께 출간된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를 읽으면서 여러 번 전율을 느꼈다. 반항심과 고집으로 뭉쳐진,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 동료나 부하들은 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용어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을 그가 구사한다고 여겼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현실은 물론 남이나 자신마저 거부하고 기만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기존 규칙도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아주 똑똑하지만 끊임없이 무언가가 왜 불가능한지 설명하려 한다. 그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잡스는 레코드판처럼 틀에 박힌 삶을 배격했다. 신제품이 앞서 출시한 제품을 잡아먹는 자기잠식 효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가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외쳤다.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더 빠른 말(馬)’이라고 답했을 것”이라는 헨리 포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장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고 변덕도 심했던 모순투성이 인물이었다. 그러나 평생을 일관한 열정과 도전, 혁신 앞에는 전율하면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잡스라는 거인을 대하면 고생물학에서 말하는 ‘섬의 규칙’을 떠올리게 된다. 형질 교류가 활발한 대륙에서는 덩치 큰 생물은 큰 대로, 작은 생물은 작은 대로 다양한 사이즈가 펼쳐진다. 그러나 섬에 고립되면 같은 종이라도 큰 놈은 작아지고 작은 몸은 반대로 커진다. 평균화 현상이다. 미국이었기에 잡스 같은 거인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여자 담임교사 의자 밑에 폭음탄을 설치해 터뜨렸고, 중학교 3학년 때는 부모 침실에 도청기를 설치해 엿듣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 그래도 부모는 그를 믿고 재능과 의지를 북돋워주었다. 학창시절 빠져든 문학·음악·선(禪)은 인문학과 과학을 결합한 엄청난 업적의 밑바탕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를 돌아본다. 인재 배출 면에서 한국은 대륙인가 섬인가. 『스티브 잡스』 한국판 추천사는 공교롭게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썼다. 안 교수는 오늘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으니 이제 ‘융합정치대학원장’으로 불려야 할 판이다. 정치 블랙홀이 참 무섭다. ‘한국의 잡스’는 자라나는 청소년들 속에서 찾아야 하나. 잡스는 고교 1학년 때 주파수 계수기를 만든다며 휼렛패커드 창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부품을 얻어냈다. 우리 영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학원에 틀어박혀 무언가 달달 외우고 있지는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진짜로 큰 전율이 다가온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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