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통행료의 콜렛-헤이그 규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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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진욱
건국대 교수·경제학

현 정부 출범 이래 공기업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7년 말 기준 156조원이었던 공기업 부채가 지난해 말에는 271조8000억원으로 3년 사이 74% 증가했다. 기획재정부 회계연도 공기업 재무현황에 따르면 공기업 부채비율이 2006년 96.8%에서 2007년 100%를 넘어서더니 2010년 말에는 무려 168.6%까지 급증했다.

 공기업 가운데에서는 LH공사가 125조원에 달하고 한국전력이 33조4000억원으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3위가 도로공사로 나타나고 있다. 도로공사는 영업이익이 1조원이나 되지만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LH공사 부채의 심각성은 많이 알려졌으나 도로공사의 부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공기업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정부 정책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공기업의 재무상태가 악화되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기업들은 자구 노력보다 돈을 빌려와 부족한 자금을 메우려 하기 때문에 더욱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게 된다. 기업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 정부가 나서서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국채 발행, 세금으로 해결하려 한다. 국채 발행은 현 세대의 짐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것이다. 세금으로 메우는 것도 수익자 부담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도로를 이용해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도로에 대한 비용을 부담해야지 그렇지 못한 사람까지 세금으로 부담을 나눠 지는 것은 공평성에 어긋난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콜렛-헤이그 규칙을 고속도로 통행료에 적용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콜렛-헤이그 규칙’은 세금을 어떻게 부과해야 생산성 향상과 공평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세금 규칙이다. 여가나 레저 관련 소비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근로를 장려하는 것에는 낮은 세금을 매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칙을 도로 통행료(혹은 전기요금)에 적용해 시간별·요일별 가격차등제로 수요량을 조절하고 근로 유인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출퇴근 시간대 할인이나 주말 할증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규칙 적용에 대한 부작용을 주장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도로 통행료를 평일이나 출퇴근 시간대에 할인하면 오히려 그 시간대에 교통혼잡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평일이나 출퇴근 시간대에 버스나 지하철 요금을 더 비싸게 부과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레저에 관한 세금 인하 등 내수 경기 활성화 정책 기조와 배치된다. 따라서 여러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도로 통행료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고속도로 건설 원칙은 수익성이 있는 도로에 대해서는 민자를 유치해 건설하고, 수익성이 떨어져 민간이 건설하기 어려운 경우에 도로공사가 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도로공사의 재무가 계속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도로공사가 통행료 조정으로 얻는 수익 향상보다 수익 구조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 전략으로는 첫째, 도로공사의 주요 업무인 고속도로 유지·관리의 효율성을 향상해야 한다. 둘째, 수익성이 떨어지는 고속도로 추가 투자 건설을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인력감축 같은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편 정부는 채무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공기업에 대해 구체적 수익구조 개선 전략을 요구하고, 부채 탕감에 성공한 경우 당근을 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공기업 채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며, 국민의 부담을 극소화할 수 있는 정책이다.

김진욱 건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