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집에 새 싱크대 2개가 설치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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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고흥군에 사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수급자) A씨 집엔 싱크대가 2개다. 모두 국가에서 공짜로 받은 것이다. A씨가 횡재한 사연은 이렇다. A씨는 2009년 9월 보건복지부로부터 165만원을 받았다. 저소득층이 낡은 집을 고칠 때 국가가 보조를 해주는 ‘기초수급자 집수리 사업’의 일환이었다. A씨는 이 돈으로 도배와 장판을 다시 하고 싱크대를 새것으로 갈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엔 국토해양부가 ‘기초수급자 주택 개ㆍ보수 사업’이라며 A씨에게 650만원을 줬다. A씨는 이 돈으로 1년도 안된 벽지ㆍ장판을 뜯어내고, 싱크대를 하나 더 들여놓았다.

이처럼 복지예산이 주먹구구 행정으로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감사원 결과 밝혀졌다. 20일 감사원이 공개한 ‘저소득층 탈빈곤 지원대책 추진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국토부는 복지부와 협의 없이 비슷한 저소득층 지원사업을 벌였다. 지난해 국토부가 복지부 지원 대상에 중복으로 지원한 사례는 1129명ㆍ공사비 62억원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지붕개량 등 똑같은 집에서 같은 종류의 공사를 한 경우는 544명ㆍ30억원이었다.

일부 시공업체는 눈먼 나랏돈을 노린 꼼수도 썼다. 전남 나주의 B건설은 지난해 7월 복지부 예산 170만원으로 지붕개량 공사를 한 뒤 허위로 서류를 꾸며 국토부에 공사비용 379만원을 타내기도 했다.

복지부는 수급자 자격관리를 허술하게 해 지난해 근로소득이 있는 1만7059명에게 현금급여 409억원을 부당으로 지급했다. 국세청으로부터 자료만 제대로 받으면 걸러낼 수도 있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지난해 자료는 감사가 시작된 뒤인 올 5월에서야 받았다고 한다. 이 중 4851명은 근로소득이 최저생계비를 넘는데도 현금급여 189억원, 의료급여 96원을 받았다. 소득인정액이 기준을 초과하는 장애인,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 가구, 한부모가족과 이미 숨져 수급자격을 상실한 사람에게도 복지급여가 지급된 확인됐다. 감사원은 복지부 장관에게 부정수급액 전액을 되돌려 받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주택관리공단㈜과 SH공사의 영구임대주택 입주자 관리도 부실했다. 영구임대아파트 126곳의 5056가구는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갱신계약을 맺지 않았고, 203가구는 가구주가 숨진 뒤 입주 자격이 없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SH공사의 경우 매년 실시하는 입주자실태 조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마치 사망자가 거주하는 것처럼 허위보고한 사실도 있었다. 감사원은 공단과 SH공사의 업무 담당자 7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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