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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 출신 대통령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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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
지식에디터

몇 달 전 우연히 탑승한 택시의 기사에게 ‘정치인의 자질과 전공의 함수 관계’에 대해 한 가지 주장을 들었다. 기사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시정(市政)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정이 잘못된 것은 시장의 전공인 법학과 밀접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시장 노릇을 잘하려면 과거에 “사기도 쳐보고, 거짓말도 해보고, 장사도 해봐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없는 법학 전공자들은 “꽉 막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사는 여야 법대 출신 정치인들을 열거하며 주장에 근거를 댔다.

 결국 사람 나름이다. 하지만 법대 출신에 대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사회적인 고정 관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고지식하다는 이미지가 있고 일을 맡겨 놓으면 잘한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에서도 법대 출신, 법률가들에 대해 애증이 교차한다. 미국인 중에는 셰익스피어 희곡 ‘헨리 4세’에 나오는 “우리가 최우선으로 할 일, 법률가들을 모두 죽이자”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에서도 ‘국가에서 허가 내준 도둑놈’이라 식의 평판이 있는가 하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고 인정받는 경우도 많다.

 미국 유권자들도 막상 투표소에서는 법률가 출신을 뽑는다. 미국 역대 대통령 44명 중에서 법률가 출신이 25명이나 된다. 미 상·하원에서도 법률가들은 최대 직업군을 차지한다. 상당수 미국인은 정치인들 중에 법률가들이 지나치게 많은 게 불만이다. ‘법률가 정치’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법과 정치는 무관하다”며 법률가들이 정계로 진출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돈 모으고 인간관계 맺는 데 유능하기 때문’이라고 비꼰다. 그들이 보기엔 미국 정치에서 당파성이 심화된 이유도 ‘따지기 좋아하는’ 법률가 정치인들의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역사 학자들은 미국의 법률가 대통령들의 업적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준다. 토머스 제퍼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을 비롯해 법률가 출신 중에는 뛰어난 대통령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원 299명 중 법대 출신이 서울대만 51명이나 된다. 그만큼 법대 출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크다. 우리 유권자는 법대, 특히 서울대 법대를 좋아한다. 법대 졸업생, 법률가들은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엘리트 집단을 구성한다. 그 집단에서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이 나오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이번 10·26 서울시장 선거만 해도 ‘서울대 사회계열과 법대를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법률가 출신이 서울 시정을 책임지게 됐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여야 유력 주자들이 모두 법대 출신이었다. 미국 언론은 그들이 법률가로서 어떤 업적을 이뤘으며 법률가로서 그들의 스타일이 대통령직 수행에 어떻게 반영될지 비교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불행히도 우리 경우에는 ‘학벌 위조 논란’에 법률가라는 직업 경력이 등장했다.

 나라마다 특정 직업군이나 경력이 지도자로 부상하는 데 유리하다. 내년 프랑스 대선의 사회당 후보로 16일 당선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는 그랑제콜 출신이 엘리제 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전통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중국 지도부는 공학 전공 출신이 많고, 영국엔 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 출신 정치 지도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대와 서울시장직이 대통령을 많이 배출할 가능성이 큰 배경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나 우리처럼 중앙집권적인 프랑스 정치에서 파리 시장이 지니는 위상을 보면 서울시장직은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여야 후보들은 한 배를 탔다. 학벌 논란보다는 언젠가 훌륭한 법대 출신 대통령이 배출되는 데 그들이 공헌하기를 바란다.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지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