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 Culpa” … 채권왕 빌 그로스, 투자자들에게 사과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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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Mea Culpa(메아 쿨파·라틴어로 ‘모든 게 내 탓이로소이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를 굴리고 있는 ‘채권왕’ 빌 그로스(Bill Gross·사진)가 투자자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다. 올해 그가 운용하고 있는 핌코의 토털리턴펀드 수익률이 바닥을 기자 모든 게 자신의 판단 착오 때문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14일(현지시간) 투자자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그로스는 지난해 말부터 공개적으로 “미국 국채를 팔아 치우라”고 조언하고 다녔다. 지난 4월엔 그가 운용하는 토털리턴펀드가 미 국채를 몽땅 팔아버렸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초저금리 정책과 두 차례 양적 완화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미 국채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정부 부채를 둘러싼 미 정치권의 정쟁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몰리면서 미 국채 가격은 되레 급등했다. 이로 인해 토털리턴펀드 실적은 곤두박질했다. 올해 이 펀드의 수익률은 1.06%로 벤치마킹 대상인 바클레이즈캐피털의 미국 채권 종합지수 상승률 3.99%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그로스는 “유럽 재정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확산하고 미국 정부 부채 한도 증액을 둘러싼 의회의 힘겨루기가 미국 정부를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몰아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위험을 피해야 할 때 도리어 떠안은 게 실수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애초 우리는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각각 2%에 이를 것이란 가정 하에 투자전략을 짰다”며 “그러나 이젠 성장률이 몇 분기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물가도 안정될 것으로 전망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포트폴리오도 이런 전망을 토대로 새로 짜겠다는 것이다.

 그로스는 벌써 새로운 베팅에 나섰다. 먼저 단기채 비중을 줄이고 장기인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채권 비중을 높였다. 지난 8월 토털리턴펀드의 모기지 채권 비중은 32%였는데 지난달 말엔 38%로 높아졌다. Fed가 지난달 3차 양적 완화 정책 대신 들고 나온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단기채를 팔고 장기채로 갈아타는 전략)’ 정책을 따라간 셈이다. 이와 달리 현금성 자산 비중은 같은 기간 마이너스 9%에서 마이너스 19%로 줄였다. 현금성 자산 비중이 마이너스란 얘기는 파생상품 등을 이용해 그만큼 대출을 늘렸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대출을 받아 장기채권 투자에 나섰다는 얘기다.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이 같은 포트폴리오는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 대출이자는 늘어나는데 장기채권 가격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로스가 이 같은 전략을 밀어붙인 건 그만큼 금리가 당분간 오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야구광인 그는 야구 이야기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지금 큰 경기를 하고 있다. 야구장에 표를 사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윌리 메이스(전설적인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의 멋진 다이빙캐치가 아니라 이기는 경기다. 핌코의 토털리턴펀드가 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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