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의 행복한 책읽기] 〈모래 군의 열두 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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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평소 생태학을 잘 모를 뿐 아니라 그다지 관심도 없던 나인지라 알도 레오폴드라는 이름은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1887년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후 오랜 기간 미국 삼림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닌 끝에 1948년에 사망했다는 사실도 썩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만년에 쓴 〈모래 군의 열두 달〉이라는 수필집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은 생생했다.

이 책은 나에게 생태학에 관련한 이론서라기보다는 한편의 산문시로 다가왔다.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우리는 현대문명에 오염되기 이전 미대륙이 간직하고 있던 자연의 함성과 향기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시내는 게으른 친구다. 녀석은 강으로 가지 않고 차라리 여기에 눌러앉을 요량인 듯, 오리나무 숲을 누비면서 흐른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들이 이 책 전편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흘러간다.

그것은 단순히 장식적인 미문이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실을 담고 있는 문장이기 때문에 은근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이런 문장에 실려 저자가 살았던 미대륙의 야생의 숲과 강, 덤불과 오솔길을 헤매다보면 진정 현대인이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폐기처분한 것들의 중요성을 가슴 저리게 깨닫게 된다.

저자는 자연보존에 대한 원론적인 주장을 개진하는 대신 이처럼 경험에 바탕해서 인간과 세계, 토지와 동식물의 거대한 조화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그는 "인간은 진화의 오디세이에서 다른 생물들의 동료 항해자일 뿐" 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생명 세계의 장엄함과 영속성에 대한 경이감을 체득해야만 한다" 고 역설한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해도 어떤 사람들에겐 텔레비전보다 기러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고귀하며 할미꽃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소중한 권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대문명의 병폐에 대한 고발도 예리하다.

"애석한 일이지만, 교육이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대가로 한 가지를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이라거나 "모든 역사는 언제나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항구적인 가치기준을 찾는 인간의 끊임없는 여행으로 이루어진다" 는 등의 명제는 오래 음미할 만한 깊이와 넉넉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에서 그가 토지 이용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오직 경제적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라면서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이것이 따분한 설교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진리의 지상명령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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