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것은 부처님이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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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옛날 중국의 큰 스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스님이 어느 날 다른 두 명의 스님과 산길을 가고 있었어. 그때, 갑자기 그 분들 곁으로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어흐흥 하고 소리를 쳤어. 세 분은 모두 꼼짝 못하고 두려움에 질렸고 호랑이는 잠시 그 자리에 머물다 지나갔단다.

호랑이가 지나가자 세 스님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 중 한 스님이 '지금 뭐가 지나갔지?'라고 물으시니 다른 한 스님이 조금 전의 두려움은 다 잊은 채로 '개 가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어?'하고 되물었어. 그러자 다른 스님은 '개가 아니라 나는 고양이로 봤는데...' 하면서 의연한 체 했단 말이야.

그 두 스님이 태연하게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데 큰 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있었지. 그러자 한 스님이 큰 스님께 '스님도 조금 전에 우리 곁을 지나간 동물을 보셨지요? 그게 뭐였지요?'하고 물었어.

아이야, 큰 스님이 뭐라 했겠니? 한참 동안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던 이 큰 스님은 '호랑이가 지나갔다'고 했다는 거야.

이 이야기는 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란다. 본 것을 본 대로, 느낀 것을 느낀대로 이야기하고 행하는 것이 곧 불교의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출발점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이야기야.

서점에 갔었다. 너희들이 보는 책들이 꽂혀 있는 책꽂이에서 철없는 아기 스님 그림이 표지에 나와 있는 책을 찾았어. 〈날마다 가슴이 요만큼씩 크는 아이〉(예림당)라는 재미있는 책을 쓰신 조대현 선생님의 책이더구나. 〈잠 깨는 산〉(문공사)이라는 제목인데, 책 표지에 '5,6학년이 읽으면 좋아요'라고 표시돼 있으니, 바로 네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보는 책이겠더구나.

이 책에는 모두 11권의 짤막한 단편 동화가 들어 있어. 조대현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내 작품 속에는 평범하지만 소박하고 욕심 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잠 깨는 산〉의 아기 스님과 화가 아저씨가 그렇고, 그밖에 〈우리 동네 김 상사〉의 상이 군인이나 〈돌 속의 새〉의 석수장이 청년 등이 다 그런 인물들입니다."라고 하셨더구나.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 속에서 작가 선생님은 '사람이 참되게 살아가는 자세인 진실'을 캐내고자 하신 것이지.

〈잠 깨는 산〉은 이 책의 맨 앞에 나오는 동화야. 아기 스님과 절을 찾아 서울에서 오신 화가 손님이 주고 받는 이야기란다. 나이로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어. 어린 시절을 부모 없이 홀로 보내고 있다는 것이야. 그런데 그 아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

〈잠 깨는 산〉이 감동적인 것은 세상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어버린다는 것이야. 아기 스님은 그냥 자기를 키워주시는 큰 스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그런 아기 스님의 삶의 태도에서 화가 선생님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거야.

아기 스님은 "저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아요. 그게 다 전생에 제가 지은 업보 때문이라고, 큰 스님이 그러셨어요."라며 "사람은 앞날을 내다보고 살아야지 지난 일에 매달려 괴로워하면 안된다"고 하더구나.

아기 스님의 자기 입으로 한 말이지만 그 말의 뜻을 어느 만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기 스님의 생활은 그런 말에 가까이 있다는 거였지.

화가 선생님은 한국전쟁의 북새통에서 고아가 된 분이었어.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 겨우 지금의 화가가 된 거지. 화가 선생님의 마음 속에는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어.

화가 선생님은 아기 스님과 함께 살고 싶었지. 평소에도 서울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던 아기 스님은 서울에 함께 가자는 화가 선생님의 청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지.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아기 스님은 화가 선생님을 피했단다.

서울로 떠나기 싫어진 거지. 왜 우리도 집을 이사하려고 할 때, 처음에 너는 좋은 집으로 간다고 좋아하더니, 곧바로 동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싫어서 '이사 가지 말자'고 징징 거리던 일과 비슷한 거야. 아이야, 넌 그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기까지 했어. 생각나지?

아기 스님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이야 변함 없지만, 무엇보다 친구들을 떨어지는 게 싫었던 거야. 아기 스님의 친구? 그래, 절 안에 아기 스님이 많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기 스님의 친구들은 '용바위 밑의 가재' '느티나무 굴 속의 다람쥐'들이야. 아기 스님은 서울에 가지 않겠다는 뜻을 화가 선생님께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한단다.

"큰 스님이 그러는데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부처님이래요. 부처님을 속이는 것처럼 나쁜 일은 없잖아요. 제가 말도 없이 떠난 걸 알면 그 친구들은 어디든지 따라다니며 저를 흉볼 거예요."
아이야, 짧은 한 마디지만, 내가 아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것 같구나.

아기 스님이 나오는 동화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또 하나의 동화가 있어.

정채봉 선생님이 쓰신 〈오세암〉(동쪽나라)이 그거야. 너도 봤니? 〈잠 깨는 산〉보다는 분량도 길고 내용도 훨씬 복잡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지. 영화로도 나왔었단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탤런트 김혜수 누나가 수녀님으로 나오는 영화야. 참 슬프게 만든 영화였어.

불교 이야기를 하자니 우리 나라의 큰 스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구나. 훌륭한 스님들이 적지 않지만, 그 중에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 스님을 이야기해야겠구나. 한용운 스님은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지. 그 스님의 시는 아직 네 나이에 이해하기는 어렵단다. 다만 그 스님이 쓰신 시 〈님의 침묵〉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라는 정도만 알아두었다가 조금 더 크면 읽어보거라.

한용운 스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적은 책이 있단다. 노혜봉 선생님이 쓰신 〈알 수 없어요〉(신구미디어)라는 책인데, 이 책 제목인 〈알 수 없어요〉도 한용운 스님이 쓰신 시의 제목 가운데 하나야. 이 책은 한용운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한 젊은이가 한용운 스님의 따님을 찾아가는 데에서 시작되지. 한용운 스님이 어려운 시기에 살아오신 발자취를 잘 읽어볼 수 있는 책이야. 이 책은 너희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거야.

아이야, 아직은 네 나이에 불교의 진리를 적은 책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불교의 깊은 뜻을 조금이라도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일은 좋은 일이야. 〈잠 깨는 산〉이나 〈알 수 없어요〉같은 책들은 그래서 네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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