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일본 GDP 통계 해프닝

중앙일보

입력

썰렁한 방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불을 더 때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벽의 온도계에 입김을 불어 수은주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어떤 게 더 옳은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일본 정부가 삼척동자보다도 못한 방법을 쓰다 외국 언론에 들통 나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뉴욕타임스는 24일 일본 경제기획청이 금융기관의 설비투자 감소분을 통계에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을 실제보다 높게 만들어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금융기관 설비투자는 GDP 산출 때 매번 집어넣던 지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연간성장률을 정부공약인 0.6%에 맞추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그렇게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경제기획청은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담당부서인 국민지출과는 "금융기관 설비투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신뢰성이 없다고 판단,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도 다음날인 25일 런던 금융시장에서 엔화가 1백8엔대로 급락하자 기획청은 황급히 수치를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뉴욕타임스 지적대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키로 했다.

경제기획청은 "마침 오늘아침 정밀조사 결과가 나와 통계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고 해명했다. 뉴욕타임스가 안썼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 아니냐는 추궁에는 펄쩍 뛰었다.

GDP 성장률은 국제경제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제지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엄청난 경제규모를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지표가 그릇 작성되고, 또 하루만에 바뀐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일본의 경기회복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예상치 않은 환율변동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준다.

일본의 GDP 통계는 이미 국제적으로 세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집권당이 정책목표로 사용하는데다 잠정치.수정치.실적치간에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기초 중의 기초인 GDP 통계가 이처럼 불투명하다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기대할 수 없다.

자기 몸무게 하나 제대로 재지 못해 외국 언론이 대신 재주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한 일본은 경제대국이 아니라 '경제 비만아' 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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