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명예의 전당(1) - 로빈 욘트

중앙일보

입력

로빈 욘트는 칼 립켄 주니어나 아지 스미스 등과 함께 1980년대 최고의 유격수로 불리는 선수로, 유격수들의 타력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꾼 인물이기도 하다.

야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 크로닌과 어니 뱅크스 이후 장타력을 갖춘 유격수들이 매우 드물어지고 루이스 아파리시오로 대표되는 수비형 유격수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까지 유격수라는 포지션에 대해 '체구가 작고 타력이 별로인 선수들만이 차지하는 자리'라는 관념이 지속되었다.

즉 '유격수는 일단 수비력이 뛰어나면 되고, 주루 플레이가 뛰어나면서 선구안이 좋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야구계를 지배하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립켄과 욘트로 인해 유격수에 대한 고정 관념은 상당히 수정되어야 했으며, 90년대에 들어 유격수 자리에 강타자가 늘어나게 된 것은 그 결과로 볼 수 있다.

우투우타였던 욘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두각을 나타내어 많은 기대를 모았다. 졸업 후 그는 1973년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에 전체 3순위, 팀내 1순위로 지명되어 메이저 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다.

마이너 리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인 그는 1974년부터 빅 리그에서 활약했는데, 그가 1955년 9월 16일생이니 이 때 나이가 만으로 18세였다.

"The Kid"라는 별명이 그에게 붙게 된 것은 이 때부터이다.("The Kid"라고 하면 흔히 테드 윌리엄스나 켄 그리피 주니어를 생각하지만, 욘트도 이 별명으로 불린 선수 중 하나이다.)

1978년 그는 약간 방황을 하게 된다. 발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가 닥쳤고, 때마침 그는 프로 골퍼가 되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시즌 초 잠시 야구계를 떠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5월부터 그라운드로 돌아왔고, 시즌 내내 뛰어난 수비력을 보였다. 공백기 때문에 올스타전에 출장하지는 못했으나, 1978 시즌 후 AP·UPI·스포팅 뉴스 등 각 언론사가 선정하는 '올해의 올스타 팀'의 유격수 부문을 휩쓸었다.

이어 1980년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하였으며, 이듬해에는 0.985의 수비율로 이 부문 리그 수위를 차지하였다.

그의 잠재력이 진정으로 만개한 것은 1982년이었다. 그는 29홈런과 0.331의 타율을 기록하였으며, 장타율 0.578로 이 부문 수위를 차지하였다. 야구 역사에서 유격수가 장타율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또한 그는 이 해에 처음으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는 이 해 AL MVP를 차지하였으며, 팀이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데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등과 어깨에 이상이 생겨 지명 타자로 주로 나섰고, 1984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타력은 여전하였으나, 어깨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1984년 시즌 후 어깨 수술을 받았고, 이후 유격수로는 더 이상 뛰기 어렵게 되었다. 수술을 받고 난 그는 1985년 시즌 초에는 좌익수로 활약하였으나, 시즌 중 중견수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그는 지명 타자로 2년이나 뛴 데다 어깨가 완전히 나았다고도 할 수 없었으므로, 그가 외야수로 변신하는 데에 대해서 사람들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기우(杞憂)였다. 그는 이 해에 단 한 개만의 에러를 범하여 AL 외야수 중 수비율 1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시즌 후 어깨 수술을 다시 받았고, 이후 계속 중견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하여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1988년 화이트 삭스를 상대로 한 어웨이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이 해에 3루타 부문에서 11개로 리그 수위에 올라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103타점과 0.387의 타율을 기록하여 다시 리그 MVP에 등극하였다. 두 포지션으로 각각 리그 MVP에 한 번 이상 오른 것은 행크 그린버그와 스탠 뮤지얼에 이어 3번째였으며, 5할 아래의 승률을 기록한 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AL 최초였다. 이는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 주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1992년 9월 9일은 욘트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그는 이 날 홈 구장인 카운티 스테이디엄에서 인디언스의 호세 메사 투수를 상대로 안타를 뽑아내어, 생애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하였다.

그는 이 기록을 달성한 메이저 리그 통산 17번째의 선수가 되었으며, '유격수로 기억되는' 선수 중에서는 호너스 와그너에 이어 2번째로 '3000안타 클럽'에 가입했다.

이듬해 시즌이 끝난 뒤 그는 3142안타와 251홈런, 1406타점과 0.285의 통산 타율 등의 기록을 뒤로 하고 은퇴하였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헌액 자격을 얻은 첫 해인 1999년에 그는 놀란 라이언·조지 브레트와 함께 전당의 멤버가 되었다.

로빈 욘트 (Robin Yount)

- 1955년 9월 16일 일리노이주 댄빌 출생
- 1974년~1993년 밀워키 브루어스 유격수
- 우투우타
- 통산 타율.285 3142안타 251홈런 1406타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