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학]대기업들이 왜 분사를 하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즘 현대.삼성.LG 같은 큰 회사들이 앞다퉈 분사(分社)를 하고 있어요. 분사란 자녀들이 자라면 시집.장가보내 분가(分家)시키듯 회사도 특정사업 분야를 독립시켜 여러 개로 쪼갠다는 뜻입니다.

그전에는 대기업들이 자기 사업영역이 아닌 분야까지 마구 진출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지적을 받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정부와 일반의 인식이 바뀌어 분사는 잘하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회사를 쪼개면 무슨 이익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기업들이 분사를 많이 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됩니다.

19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를 불러온 외환위기 이후에 형편이 어려운 회사들이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떼어내 팔거나 사람과 조직을 줄이면서(이것을 흔히 구조조정이라고 부르지요) 분사를 시작했어요.

회사들이 돈벌이가 시원찮거나 되레 손해를 보는 사업 부문까지 떠안고 있으니까 빚이 늘고 살림을 꾸려가기가 어려워졌죠.

그래서 처음에는 '몸통' 회사가 살기 위해 주력이 아닌 '곁가지' 사업을 떼내기 시작한 거죠. 30대 그룹에서 97년에는 겨우 6개사가 분사했는데, 98년에는 무려 3백66개사가 분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답니다.

벤처기업을 만들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벤처 열풍' 이 불면서 오히려 회사 내의 유망한 사업 분야를 떼내 아들회사(자회사)로 만들어 엄마회사(모기업)가 덕을 보려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회사를 쪼개려는 목적에 따라 그 방식도 달라집니다. 회사를 쪼개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 중 바이아웃(Buy out.임직원 매수형 분사)과 스핀오프(Spin off.기업분할)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용어가 어렵지만 차근차근 설명할께요.

바이아웃은 외환위기 직후에 기업이 군살을 제거하는 단계에서 많이 쓴 방식이고, 스핀오프는 최근 대기업이 유망 사업부를 떼내 벤처기업으로 독립시킬 때 많이 사용하죠. 그러면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 지 알아볼까요.

바이아웃이란 영어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권리를 돈주고 산다는 뜻입니다.

회사에서 떼내는 사업 분야를 임직원이 직접 사들여 주인이 된 뒤 알아서 꾸려가는 방식이지요. 제품을 생산하는 부문이나 경리.총무 같은 관리 부문을 떼어내 모기업의 주문을 받아 물건을 대거나(납품) 다른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따다가 생산해 주는 식으로 독립적인 경영을 하는 것이죠.

그 사업 부문을 경영진이 사들일 때는 MBO(management buy out.경영진 매수형 분사)라고 하고, 종업원들이 살 때는 EBO(employment buy out.종업원 매수형 분사)라고 부릅니다.

회사를 지배하는 권리를 누가 사느냐에 따라 나뉘는 것이지요.

바이아웃이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 사이에 성행한 것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비대해진 조직의 군살을 도려내면서도 해당 사업 부문을 임직원에게 팔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실업자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라는 경제단체가 지난해 바이아웃 형태로 분사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분사의 주된 목적이 ▶조직을 가볍게 하고(슬림화.48.4%)▶수익성이 적은 사업(한계사업)과 비주력사업을 정리(29%)하는 것이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분사는 이렇게 대기업의 부담을 덜자는 차원에서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분사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뜸해졌습니다.

분사는 98년에 가장 많았었는데 지난해에는 1백85개로 98년의 절반 가까이로 줄었으며, 이것도 상반기(1백18개)에서 하반기(67개)로 갈수록 줄었지요.

지난해 하반기 벤처 열풍에 맞춰 대기업들이 애용한 분사 전략은 스핀오프 방식입니다.

우리말로는 '기업분할' 이라고 흔히 번역하지요. 자회사나 특정 사업 부문의 주식을 모기업 주주에게 소유 주식의 비율만큼 나눠주고 사업 부문을 분리.독립하는 것입니다.

현재 스핀오프 방식으로 분사를 한 기업은 삼성물산의 케어캠프닷컴 등 몇 개 안되지만 대기업마다 인터넷 사업이나 신기술 분야 등을 스핀오프 방식으로 분사하겠다고 속속 발표하고 있어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자, 이쯤 되면 바이아웃과 스핀오프의 차이가 어렴풋이 그려지나요. 바이아웃이 해당 사업 부문의 임직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분사 형태인데 비해 스핀오프를 한 기업은 여전히 모기업 주주들이 주인이'여전히 경영에 대해 일부 권한을 가지는 분사'라고 보면 됩니다.

스핀오프 방식은 얼마 전에 그랬듯이 기존의 유명 대기업보다 신기술을 가진 신생 벤처기업의 주가가 더 높아지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기업이 보유한 신기술 사업 부문이 벤처기업으로 독립하면 코스닥 시장에 등록해 주가를 높일 수 있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투자도 받아 모기업의 한 사업부서로 남아있을 때보다 더 큰 회사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독립한 자회사의 주식을 많이 가진 모회사가 주식을 팔아 돈을 벌 수 있고, 좋은 기업을 많이 거느렸다고 해서 모기업의 주식 가격도 덩달아 높아지는 등 일거양득이 되는 셈이지요. '분사는 우리나라에선 아직 초기단계라 효과적인 기업경영 방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힘듭니다.

그러나 최근 분사 기업을 분석한 전문가의 보고서를 보면 기존 대기업의 경우 조직이 워낙 크고 담당자→과장→부장→이사→상무→전무→→대표 등 결제 단계가 많아 의사결정이 느린 데 비해 분사한 회사는 식구도 단출하고 의사결정이 빨라 고객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해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바이아웃 방식으로 독립한 기업들도 임직원들이 주인이 돼 더욱 열심히 일해 대기업 내 한 조직의 샐러리맨으로 있을 때보다 영업실적이 좋아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국 대기업이 여러가지 사업 부문을 모두 껴안고 둔하게 움직이기 보다 사업을 잘게 쪼개 스스로 꾸려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