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그룹, 대 이어 동업 '쌍끌이 경영 4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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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그룹이 선대 동업회장이 작고한 뒤에도 대를 이어 동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55년 연탄사업으로 동업을 시작한 유성연(劉成淵).이장균(李壯均)선대 회장이 세상을 떠난지 1년 넘게 2세의 동업이 이어지고 있다.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이 그룹은 2세인 유상덕(劉相德.42).이만득(李萬得.45)회장이 경영권을 이어 받았으며, 네개 계열사의 주식을 똑같이 나눠갖고 있다.

그룹의 사업 투자나 계열사 사장 인사는 두 회장이 합의해 결정한다.

더구나 이들 2세 회장은 서울 방배동 한 동네에 살면서 3세 자녀들이 2세 회장에게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선대 회장은 모두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50년 한국전쟁 직후 각각 단신으로 월남해 잡화와 식료품 판매업을 하다 연탄판매업을 함께 시작했다.

사업 초기 부부 두쌍이 단칸 방에서 함께 기거하기도 했다. 97년 12월 이장균 회장이 작고한 지 15개월만에 유성연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유성연 회장은 지난해 3월 작고 직전 그룹 임직원들이 마련한 자서전 '성실의 삶, 일진(一進)의 길' 출판 기념회에서 먼저 간 李장균 회장을 기리자며 묵념을 제의한 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유성연 회장은 93년 골수암 판정을 받아 자신이 먼저 세상을 뜰 것으로 생각했는데 7살 아래인 이장균 회장이 뜻밖의 병을 얻어 숨지자 안타까와했다.

유성연 회장은 생전에 동업과 관련한 질문을 받으면 "출자 지분이 차이가 나더라도 이익금을 똑같이 나누겠다는 자세가 없으면 동업은 안하는 게 좋다" 고 말했다.

유성연 회장은 이장균 회장의 장례식이 끝난 뒤 두 2세 회장을 불러 두손을 잡게 한 뒤 "서로 욕심내지 말고 혈육처럼 지내라" 며 유언같이 당부했다.

그 뒤 2세 회장은 지분을 '%' 단위로 나누지 않고 주식수까지 맞추는 식으로 지분을 조정했다.

선대 회장의 관할 구역대로 ㈜삼탄과 삼천리제약은 유상덕 회장이, 도시가스업을 하는 삼천리와 가스배관 제작업체인 ㈜M&C는 이만득 회장이 맡아 그룹 전체적으로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이찬의(李粲義)삼천리제약 부사장은 "선대 회장들은 서로 상대방이 경영에 소홀할 때 다른 분이 더 열심히 일하고, 한분이 돈을 많이 쓰면 다른 분이 적게 쓰는 희생정신을 발휘했다" 고 말했다.

경영 스타일이 다른 점도 동업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劉 선대 회장 부자는 과묵하고 꼼꼼하고, 李 선대 회장 부자는 외향적, 공격적이어서 서로 보완했다는 것이다.

이만득 회장이 발전사업 진출.가스공사 인수 등 앞으로 종합 에너지 업체로 사업 기반을 늘릴 필요가 있는 가스 서비스 업체인 ㈜삼천리를 맡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제약과 자원개발은 유상덕 회장이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삼천리그룹〓연탄 소매업으로 사세를 키운 뒤 70년 국내 최대 무연탄 광산인 삼척탄좌를 인수했다.

83년 인도네시아에서 유연탄 광산 등 자원개발에 나섰고 그해 삼천리제약을 설립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연탄산업이 침체해 주력 기업인 ㈜삼탄의 경영이 한때 흔들렸지만 적자였던 스포츠 의류.건설 계열사 등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97년 외환위기 때에도 인위적인 감원을 안하면서 보너스를 더 주기도 했다.

삼천리제약이 96년에 개발한 에이즈 치료용 원료인 지도부딘을 글락소 등 다국적 제약 기업에 독점 납품해 97년 9백억원 매출에 4백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또 서울시 면적만한 인도네시아 광산 개발이 본 궤도에 올라 네개 계열사 모두 흑자 경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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