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진단 지표 '과거는 좋은데 미래는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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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내일이 불안하다. "

우리 경제를 진단하는 지표들간에 명암(明暗)이 엇갈리고 있다. 성장률.실업.물가 등 지금까지의 경제 성적표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앞날을 미리 예상해 움직이는 시장 지표들은 불안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표들의 움직임이 혼란스럽긴 하지만, 불확실성과 불안감 해소가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라는 점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 '과거' 지표는 좋다〓한국은행은 23일 올 1분기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기준)은 12.8%를 기록, 지난해 2분기 이후 1년째 두자릿수 성장을 지속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정부가 전망한 성장률이 6%대인 점을 감안할 때 오히려 과열을 걱정해야할 수치다. 한은은 수출과 설비투자.민간소비 등이 고르게 좋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높은 경제성장은 크게 늘어난 일자리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중 실업률은 전월보다 0.6%포인트나 떨어진 4.1%를 기록,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실업자 수는 90만명으로, 한달새 12만8천명이나 줄었다.

고성장에 실업률이 떨어지면 물가가 들먹이게 마련이지만, 아직은 걱정이 없다. 소비자물가는 올들어 4월말까지 0.4% 오르는 데 그치고 있다. 정부는 올 물가상승 억제목표치인 3%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국제수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문제지만, 국제유가가 예상 밖으로 오르고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2년 가까이 미뤘던 투자를 본격 재개한 데 따른 것이란 점을 감안해줘야 한다.

◇ '미래' 지표는 불안〓무엇보다 경제주체들을 괴롭히는 것은 주가하락이다. 증권거래소의 종합주가지수는 23일 또다시 11.85포인트 하락해 680선마저 무너졌다. 코스닥시장의 코스닥지수도 4.08포인트 떨어진 118.33을 기록, 이제 100선을 걱정해야할 처지다.

증권시장이 경제를 비추는 '거울' 이란 점을 생각할 때 우리 경제의 불안징후를 반영한 것이다.

금리도 들먹이고 있다. 채권시장의 3년만기 회사채 유통금리는 이날 0.06%포인트 오른 10.05%를 기록, 한달여 만에 다시 두자릿수로 올라섰다. 투자자들이 장기투자를 꺼리고 돈을 자꾸 단기로만 굴리고 있는 탓이다.

경제의 대외적 평가지표인 환율도 다시 3.8원이 올라 달러당 1천1백34.4원을 기록했다. 환율은 7일째 (개장일 기준) 오르고 있다.

국제유가의 오름세도 심상치 않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두바이산 유가는 지난달 배럴당 평균 22달러선에서 최근 25달러를 넘었다.

이같은 추세라면 다음달 국내 휘발유값은 ℓ당 1천2백50~1천3백원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유가가 오르면 다른 공산품 가격과 공공요금 등에 연쇄 파급효과를 미쳐 물가안정 기조를 뒤흔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시장의 불확실성이 문제〓최공필(崔公弼)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같은 지표들간의 명암을 "거시지표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확인할 수 있는 과거 경제의 모습인 반면 주가나 환율같은 시장 지표들은 현재와 특히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반영한 탓" 으로 해석했다.

그는 "국민은 그동안 구조개혁이 미흡했고, 앞으로 남은 구조개혁의 숙제도 제대로 풀릴지 미심쩍어 하고 있다는 증거" 라면서 그는 "이제라도 금융부실을 확실히 털기 위해 부실의 손실분담 원칙과 공적자금 조성계획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고 제안했다.

구조개혁을 치밀하고 예측가능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위원은 "거시지표가 좋은 것은 그동안 구조개혁의 고통을 뒤로 미룬 덕택이기도 하다" 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나 경제주체들이 괜찮은 거시지표만 보고 현실에 안주하면 또다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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