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칸첸중가] 8000m봉 등정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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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은 해발 8천m가 넘는 봉우리가 14개 있다.‘히말라야 14좌’로 불리는 이들 고봉의 완전 등정은 세계 산악계에서는 ‘신화’로 칭송된다.

현재까지 8천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등정한 사람은 모두 5명.세계의 철인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쓰너(1986년 10월)와 폴란드의 영웅 예지 쿠크츠카(87년 9월),95년 가을 칸첸중가를 마지막으로 등정함으로써 14좌를 완등한 스위스 에라르 로레땅(95년 10월) 그리고 최근(96년 봄)에 마나슬루를 등정해 위업을 달성한 멕시코의 카를로스 카르슬리오와 크리스토프 폴란드의 비엘리키 등이다.

그러나 이들 중 예지 쿠크츠카는 89년 가을 로체 남벽 등반중 추락사해 현존하는 14좌 등정자는 모두 4명이다. 이밖에 10개 이상의 8천m급 봉우리를 오른 사람은 모두 18명으로 이중 7명은 히말라야 등반 도중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나라별로는 이탈리아가 4명으로 가장 많고 폴란드와 스위스 각 3명,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2명,스페인 1명 순이다. 메쓰너와 쿠크츠카 이래 10년 가까이 단절된 8천m급 완등 레이스는 95년 들어 새로 불붙기 시작했다.그 가운데 세번째의 완등자로 가장 유력시 되던 프랑스의 버느아 샤무는 95년 가을 마지막 14개째 봉우리인 칸첸중가 등반중 행방불명돼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샤무와 경쟁중이던 스위스의 에라르 로레탕이 3번째로 완등자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96년 5월에는 멕시코의 카를로스 카르솔리오가,9월에는 폴란드의 크시슈토프 비엘레츠키가 각각 4,5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이렇게 96년까지 5명의 완등자가 탄생하는 사이 이들과 함께 레이스를 펼치던 브누아 샤무, 마르셀 루에디 등 여러 알피니스트가 등반중 사망함으로써 8천m급 고봉 등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여실히 증명했다.

일례로 세번째 완등자인 로레탕도 14좌 완등에 성공한 뒤 파트너 로이와 함께 칸첸중가 정상을 오르다 실종되는 비극을 맞았다. 당시 산을 함께 오르던 셰르파 1명이 등반중 추락사하자 겁에 질린 동료 셰르파들이 하산해버렸다.그러나 그들은 등정을 강행, 강풍과 추위에 시달리다 정상을 눈앞에 둔채 실종되고 말았다.

아시아권에서는 80년대 일본인 오자키 타카시와 야마다 노보루 등이 명성을 날렸으나 두 사람 모두 10개봉을 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에베레스트와 초오유,시샤팡마 등 8천m급 고봉이 여럿 솟아 있는 중국의 경우 중국과 티베트등산협회가 합동팀을 구성, 완등 레이스를 펼쳐 9개봉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을 배출하는 등 14개봉 완등에 근접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짧은 히말라야 등반 역사와 많은 산악인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77년 에베레스트(8,848m)를 초등한 이후로 괄목할 만한 성과로 산악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 있다.

이중 엄홍길씨는 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지난해 가셔브럼 1·2봉을 오름으로써 국내 및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8천m급 10개좌를 등정했으나,지난 98년 안나푸르나 등반에서 동료 셰르파를 구하려다 추락,발목 골절의 부상을 입은채 등정을 포기해야만했다.

당시 엄홍길씨가 동료 셰르파를 구하려 눈앞에 보이는 정상을 포기하고 돌아선 소식이 알려지자 그는 그의 주변과 많은 등반가들로부터 올바른 산악인의 귀감으로 칭송 받기도 했다.

이밖에 국내 산악인 가운데 박영석씨가 9개봉 등정으로 그의 뒤를 바짝 뒤쫒고 있으며 한왕용씨도 5개봉을 등정,이들 두사람의 뒤를 추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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