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모 라가와 〈아기와 나〉②

중앙일보

입력

아기 미노루가 형 타쿠야에게 집착하고 애정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엄마 같은 형이니까. 하지만 두 아이가 정말 가엾다.
어린 나이에 둘 다 사랑과 보살핌을 듬뿍 받아야 할 텐데. 그래도 그런 만큼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는 법을 일찍 배웠다고 할까?

사실 타쿠야는 미노루에게 무척 엄격한 형이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무구한 그에게 이런 완고한 면도 있나 싶을 만큼. 어쩌면 미노루에게만은 수줍음 타지 않고 자신을 내보이는 유일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아빠에게조차 의젓한 타쿠야가 아닌가?

누구에게나 상냥한 타쿠야는 동생에게만은 대충 넘어가는 법 없이 바로 호통을 치는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필요한 경우라 판단 될 때 만이지만. 야단쳐야 할 때 즉각 혼내는 것이 타쿠야의 교육방침이다.

자신의 시간을 점령당하고 많은 것을 희생하지만 동생을 애지중지한다. 그 아이가 동생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다.

부드럽게 토닥이며 아들을 어르는 아빠에게 나는 '그렇게 자상하게는 못하겠다'고 속상해하자 그가 말한다.
'아빠도 타쿠야처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그럴 때의 큰아들은 거의 조교처럼 딱딱해진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아빠는 '타쿠야가 아니면 저렇게 못하지...'.라며 중얼거린다. 항상 바쁜 아빠로서는 외로움을 잘 타고 응석받이 아기에게 엄해지기 힘든 것이다.

타쿠야의 교육방침 2번째.
항상 먼저 모범을 보이면 그를 본받아 동생도 흉내를 낸다 타쿠야가 미노루에게 주의를 주거나 가르치는 걸 보면 착실하고 매우 열심이며 무척 진지하다.
하지만 답답하지 만은 않다. 경계심은 쉽게 동정과 따뜻함으로 풀리고 바탕은 선하기 그지없다.

그 깨끗하고 순수함을 어느 누구에게 찾을 것인가? 타쿠야만의 고귀한 특성이고 그 면모는 미노루에게도 이어져 있다. 그 면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지만 역시 이런 착한 마음씨는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해 준다.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마음. 그런 보물을 가진 그를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까? 가만히 관찰해보면 생활 태도, 습관, 버릇, 예절 뭐 하나 흠 잡을 게 하나 없다.

예절 바르고 가정교육 잘된 아이. 그대로이지만 표면만이 아니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아이라는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귀찮기만 하고 끝도 없는 아기 돌보기를 신통할 만큼 잘해 낸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달리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닌데.(아무리 봐도 그의 요란하고 활기찬 이웃들이란 도와주긴 커녕 귀찮게 구는 존재 아니던가?)
동화책 읽어주기. 놀이터에서 놀아주기 등등 아기의 눈 높이에서 돌봐주는 과장에 그려져 있음을 본다.

이렇게 잘 보살펴 주는 만큼 미노루는 형이 최고로 좋다. 아빠보다 더 믿을 수 있는 보호자로 믿고 따르는 것이 틀림없다.

형아 오로지 형 뿐이다.
좀더 의젓하고 그렇게 잘 울지만 않으면 기특할텐데 말이다. 전편을 통해 보아도 아빠는 형보다 무른 편이다. 오히려 아빠가 훨씬 부드러운 편인데도 형에게 유달리 집착한다.

휴일엔 주로 늦잠을 자고 애들과 놀아 주고 싶어하지만 빡빡한 회사 생활에 시달리는 -전형적인 일본의 셀러리맨 생활이 부분부분 묘사된다- 응석만 받아주는 편인 아빠보다 늘 함께 있는 형 쪽이 더 믿음직한 걸까?

작품을 보다보면 미노루가 형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미노루의 꿈속에 나타난 형은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요정 '데이'는 평소의 타쿠야와 많이 다르다. 금방 펄쩍펄쩍 뛰고 비꼬기도 잘 하고 발끈하기 쉽고, 특유의 보호 본능없이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표현 된다. (의미하는 바, 사실 이래야 정상 아닌가? 타쿠야는 지나치게 빈틈이 없다)

이 부분이 대단한 심리적인 암시까진 아니지만 평범한 소년이라면 이런 것이 당연하다
그 꿈이 심리적인 암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혹 미노루도 그런 형-자신 때문에 너무 일찍 성숙해져버린 형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엾은 미노루. 너무 어려서 엄말 잃어 버려 꿈과 환상 속에서 밖에 만날 수 없다니 애처롭기 그지없다. 엄마의 보살핌 엄마 내음이 얼마나 그리울까?
그런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애정이 충족되지 못해서 일반 가정의 아이보다 잘 울고 때쟁이가 된 걸까?

그러나 결국 모든 아양을 다 받아 주는 타쿠야.
그는 어쩌면 미노루가 없으면 직접적이고 바로바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전혀 없을 지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언제나 침착 상냥, 얌전이니까

그를 일찍 철들게 한 것도 아기지만 그를 일찍 성숙하게 한 것도 아기이다. 아기로 인해 그는 새로운 눈을 떴다. 인생의 보물을 일찍 발견한 것이다.

이런 자상함, 어른스러움, 역시 동생 덕이고 다독거릴 줄 알고 감싸주고 위로해 주고 배풀 줄 알 게 된 것은 미를 돌보면서 일찍 표출 됐다고 본다. 장난스런 면도 생겼고 생기 있고 표현을 즉각 하게 된 일은 어린 동생 덕이다.

두 형제가 비극적인 환경이란 조건상 매우 친밀해지고 가까워지며 교류를 정도 이상 세심하게 나누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 본성 그대로 아기자기하고 다정다감해서 귀엽고 기특하다.

독자들도 가만히 보면 관찰자의 입장일 때와 자신이 주체일 때 타쿠야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자기 의견을 남에게 내세우는 일(의견 제시)도 별로 없고 옆에서 차분히 관찰하고 있다. 이럴 때의 타쿠야는 얌전하고 예의 바르고 좀 행동력이 뒤떨어진다. 표현력도 적다.
좀 우유부단 하다. 이 아이는 햄릿 타입이랄까? 대신 끼어들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러나 주체일 때는 다르다.
특히 미노루의 일일 때가 그렇다. 누구보다 격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끈질기며 열심이다. 그런 면모는 12권 [제65화 신이(미노루)의 반항] 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사건의 발단은 '아기는 음식을 깨끗하게 먹기 힘들다는 당연한 사실'을 타쿠야가 편안히 받아들이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예민한 상처 -엄마가 없어 (결손 가정이라)부족하고 버릇없다-를 건드렸기 때문에 타쿠야는 지나치게 강경하게 나오게 된다.
동생에 관한 한 좀 딱딱해 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좀 더 여유를 가져도 되었을 텐데 미노루가 부족한 것은 자기가 부족한 형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확대 생각해 버린 것이다.

즉 그것은 엄마를 흠잡히는 것이라고. 굉장히 극적인 연상과정이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느낀다는 증거이다.
열성과 정성을 다해 '바른 식사법'을 가르치는 형. 그러나 아기로서는 따라가기 쉽지 않을걸 어쩌랴.

결국 신경전으로 지친 형제는 둘 다 감정을 주체 못한다. 그때 '자신의 이런 면'을 타쿠야는 깨달았다. '위해서'긴했지만 정도가 지나쳤다는 걸.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자책한다. 남 탓 결코 안 하는 착실함이 있으니 그럴수 있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역시 타쿠야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자긴 형이니까 굳이 이런 책임까지 죄다 떠맡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 없는데... 자청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서.

게다가 아빠가 도움을 주지 않는 다고 절대 원망하지도 않는다. 아이로선 사실 무리한 일 아닌가?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누굴 원망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다니?
이래서 타쿠야가 기특하다는 것이다. 나이와 철이 드는 것은 비례하지 않는다. 어른이면서 무책임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진지하게 동생의 일을 상의하는 큰아들을 보면서 아빠는 문득 깨닫는다.
"어, 마치 부부가 하는 대화 같군." 타쿠야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웠다는 것을 그도 느끼게 된다.

"타쿠야가 그렇게까지 날카로워 진 건 아빠인 나에게도 책임이 있지. 지금 생각 해 보니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야.
난 아빠로서의 역할을 타쿠야에게 시켰던 거야. 미노루를 위한 거라곤 하지만 거칠게 말해서 주의를 주는 아주 싫은 역할이었을 텐데...
난 그때마다 '그래 그래'라고 말릴 뿐 왠지 좋기 만한 아빠역할 뿐이었지. 조금만 내가 정신을 차렸더라면 둘은 싸우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야."

결국 갈등은 증폭되어 식사 중에 뛰쳐나간 사람은 다름 아닌 타쿠야였다. 그런데 돌아온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내가 훨씬 풀이 죽었어......하지만...나, 미노루를 위해:

"이런 저런 일도 있는 거란다. 이제 조금 크면 미노루도 알거야."
아빠는 측은해져 위로하려 하지만 되려 아들의 말을 듣고 놀라고 만다.

"하..하지만 미노루도 알고 있어. 알고 열심히 노력하니까, 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노력해도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운거야. 난 미노루를 위해서라고 생각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노루에게 상처를 입히고 너무 심하게 행동했어..."

어쩌면 미노루의 정신적인 아버지는 형일지도 모른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결국 아빠조차 그들 형제애에 감동하고 만다.

도무지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타쿠야. 자.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보부 타쿠야를 만나려면 어서 책장을 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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