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B2B 경쟁 갈수록 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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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간 전자상거래(B2B) 망 선점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개별 기업의 자체 구매.조달을 위해 시작된 전자상거래는 올 초부터 국내 업체간 연합으로 추진됐으며, 최근에는 외국의 주요 기업을 아우르는 다국적 전자상거래망 구축으로 번지고 있다.

국내 B2B 시장 규모가 3년 뒤에는 기업과 소비자간 전자상거래(B2C) 시장의 5배인 2조2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앤더슨컨설팅) 이 나오는 등 기업간 전자상거래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제품의 구매.판매과정에서 생겼던 ''뒷돈'' 과 ''비자금'' 조성이 어려워지는 등 인터넷 혁명이 기업문화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품 표준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마땅한 사이버 결제수단이 없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 어떤 업종에서 주로 하나

개별 기업 차원의 B2B는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자동차.전자.화학 등 부품 구매가 많은 업종부터 유통.종합상사까지 뛰어들고 있다.

한국.일본.대만 등 6개국 28개 화학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 2월 ''켐크로스닷컴'' 을 만들었고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HP.컴팩, 일본의 NEC 등 반도체.컴퓨터.전자부품 산업을 이끄는 12개 업체와 손잡고 인터넷 B2B 전문기업을 설립하기로 했다.

LG상사 등 국내 6개사도 미국 커머스원과 손잡고 오는 9월부터 화학.에너지.자동차 등 전 업종을 망라하는 B2B 서비스를 시작한다. 국내 부품업체의 세계적인 인터넷 부품 조달망 가입도 활발하다.

한국타이어와 에어컨 생산업체인 한라공조는 최근 미국 포드사의 B2B망인 ''오토 익스체인지'' 에 가입했다.

또 고무 부품 생산업체인 평화산업과 주름관(벨로즈) 제조업체인 SJM 등도 GM의 ''트레이드 익스체인지'' 등 부품 조달망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 큰 흐름은 전자상거래

미국 인터넷 관련 조사 전문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는 지난해 미국내 B2C 시장의 5배였던 B2B 시장이 2003년에 12배가 넘는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앤더슨컨설팅은 1999년 4백억원이었던 한국의 B2B 시장 규모가 2000년 1천8백억원2001년 4천8백억원2002년 1조1천억원2003년 2조2천억원으로 급팽창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간 전자상거래가 낮은 구매비용과 재고 감축생산주기 감축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고객 서비스낮은 판매 및 마케팅 비용 등으로 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데 이론이 거의 없다.

김인수 삼성전자 상무는 "삼성이 주도한 12개사 합작사업으로 업체들은 사이버 공간을 활용해 구매비용을 5~7% 정도 절감할 수 있을 것" 이라며 "인터넷망을 이용한 원가절감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라고 말했다.

◇ 달라지는 기업문화

전자상거래가 늘어나면서 기존 구매.판매 조직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공개경쟁 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구매절차가 투명해짐에 따라 그동안 기존 구매조직이 갖고 있던 ''정보의 독점 현상'' 이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 구매 시스템을 도입한 뒤 생산성이 30% 정도 늘어난 것으로 평가한 삼성물산은 기존 구매담당 인력 중 5명을 최근 다른 부서로 배치했다.

LG상사 관계자는 "일부 기업에서 구매팀을 중심으로 ''밥줄이 끊어진다'' 며 B2B 시장 진출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면서 "구매정보가 공개되고 투명해져 ''사는 사람'' 과 ''파는 사람'' 이 동등한 입장이 되는 쪽으로 기업문화가 바뀔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김형철 포철 차장은 "품질이나 가격보다 ''거래관계'' 나 ''연분'' 이 중시돼온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고 말했다.

전자상거래의 확산으로 일부 기업들이 그동안 구매단가 부풀리기 등으로 마련해온 비자금 조성 관행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은 "기업회계의 부정은 재고자산 등에 대한 평가왜곡, 기업간 거래결제 지연에 따른 변형 회계처리에서 주로 발생했다" 면서 "앞으로는 기업의 주요 거래가 사이버 상에서 순식간에 이뤄지게 돼 부정의 소지가 크게 줄어들 것" 이라고 전망했다.

◇ 해결해야 할 일도 많다

B2B를 시작하기에 앞서 실물을 보지 않고도 주문할 수 있도록 부품 표준화가 필요하다. 섬유 부문은 표준화율이 10% 미만이어서 전자상거래도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김형수 현대중공업 부장은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특별 사양을 줄이고 부품 표준화 작업을 서둘러 규격품의 비중을 높여나갈 계획" 이라고 말했다.

유병구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실장은 "현재는 시장 선점을 위해 B2B 사업추진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으나 정보기술의 발전속도로 볼 때 앞으로 실행 단계에 가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등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 이라고 말했다.

유실장은 결국 B2B가 실행될 시점에서는 시장을 선점한 것보다 유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효과적인 전자결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급선무다.

아직까지 기업들은 사이버 상에서 거래하면서도 결제는 대부분 직접 만나 현금을 주고 받거나 상업어음을 교환하고 있다.

B2B 업계 관계자는 "B2B 활성화를 위해선 어음결제를 사이버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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