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ento mori, 히치콕의 죽음 20주년을 추모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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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을 기념하는 것

6년전 그러니까 1995년 전세계적으로(한국을 포함해서)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했었다. 뤼미에르가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영화를 처음 상영한 것이 1895년이니까, 1995년은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 탄생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 고다르가 영화 탄생 100주년 다큐멘터리에서 지적하듯이 1895년은 사실 영화를 '최초로 돈을 받고, 즉 상업적으로 상영한 날'이기 때문이다.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건 결국 영화의 '상업화 100년'을 기념하는 셈이다. 만약 영화와 관련해서 '기념'해야 한다면 뭔가 다른 어떤 것, 영화가 예술로서 불리어지게 된 것(클로즈업, 몽타쥬의 발명과 이러한 혁신에 기여한 시네아트스의 탄생) 혹은 진정한 의미의 영화적 사건(영화의 친구들로서의 시네필의 탄생, 누벨 바그나 뉴 저먼 시네마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들을 또한 기념해야만 한다.

1998년과 1999년 전세계적으로 또 한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전세계적으로 있었다. 1998년에는 소비에트의 위대한 영화 감독이자 몽타쥬 이론가였던 에이젠슈테인(1898-1948)의 탄생 100주년이 있었고,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에는 서스펜스의 대가라고 불리어지는 알프레드 히치콕(1899-1980)의 탄생 100주년 행사가 있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선 이 두 감독의 탄생을 기념하는 그 어떤 행사도(영화 잡지에서 특집 기사를 다뤘던 것을 제외한다면) 없었다. 사실 지난 20세기에 우리는 단지 영화의 '상업화'만을 기념했을 뿐이었다.

시네아스트의 죽음

무릇 모든 탄생은 '죽음'을 동반한다. 간혹 탄생보다 죽음이 더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영화가 인간처럼 삶의 시간이라는 수명을 갖고 있다면, 우린 시네아스트의 탄생만큼이나 그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1998년은 에이젠슈테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그의 죽음 50주년이 되는 셈이었다. 그의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에이젠슈테인은 무성 영화와 영화의 고전 시기를 거치면서 몽타쥬의 영화를 만들어냈고, 유성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사운드와 이미지의 결합(수직적 몽타쥬)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1940년대는 새로운 영화, 즉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1941),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파이자〉(1946)와 〈독일 영년〉(1947),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1949)이 나온 시대였다. 에이젠슈테인의 죽음은 다시 말해 현대 영화의 시작을 의미했다.

마찬가지로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기념한 히치콕의 탄생과 더불어(작년 로베르 브레송의 죽음이 또한 있었다), 우리는 21세기의 첫 해에 히치콕의 죽음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해야만 한다. 히치콕은 1980년 4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다시 말해 2000년인 올해는 그의 죽음 20주년이 되는 셈이다.

〈이창〉과 〈현기증〉은 모두 억압된 시각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현대적인 인물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고(부러진 다리와 현기증), 그래서 그들은 행동하지 않고 단지 '보기'만 할뿐이다.

죽음을 기억하라 momento mori

"무성 영화는 영화의 가장 순수한 형태입니다...요즘 만들어지는 많은 영화 중에는 시네마가 거의 없습니다. 그 영화들은 거의 내가 '대화하는 사람들의 사진첩'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사운드가 도입되면서 영화가 하루아침에 연극적 형식을 띠게 된 것은 불행한 것으로 보입니다...그 결과 영화적 스타일이 소멸되었고 환상도 소멸되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히치콕은 무성영화의 죽음에 안타까워했던 시네아스트였다. 그는 사운드의 도래와 더불어 무성영화가 갖고 있던 자유로운 카메라의 운동과 시각적 표현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아마도 히치콕은 거의 최초로 의혹, 질투, 욕망, 부러움등의 감정을 설명(대사)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감독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또한 인물들간의 혹은 사건들의 〈〈관계〉〉를 순수하게 카메라의 운동을 통해 보여주고, 이 관계들을 따라 관객이 사건을 '추론'하게 만든 시네아스트였다. 그는 영화에 관객을 참여하게 만들고(서스펜스), 감독 스스로가 영화에 참여(카메오)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로메르는 히치콕을 무르나우와 에이젠슈테인과 비교하면서 '영화 형식'의 비범한 창안자라고 불렀다. 그의 죽음은 따라서 시각적인 '영화의 힘'이 종말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다르는 1980년 히치콕의 죽음을 '하나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이전', 즉 시각성에 대한 의심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시각성의 쇠퇴로 정의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의 소멸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탄생은 늘 새로운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탄생으로 이전의 탄생을 낡은 것이라고 말한다. 21세기는 새로움의 시작,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속도의 빠름으로 대표되는 시대이다. 하지만 탄생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것은 죽음들이다. 한 명의 위대한 시네아스트의 죽음을 기리는 것(마치 히치콕이 죽어버린 무성 영화에 회한을 가졌던 것처럼)은 잊혀졌던 영화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것이다:mo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얼마나 이러한 일들에 무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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