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오너 사재출연 공방] 총수 자금출자는 당연…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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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투신증권의 부실 처리를 위한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 등 현대그룹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사재출연을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도 현대 관계자들을 만나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알아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할 것" 이라며 현대의 추가적인 자구책을 독려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현대투신의 부실은 경영을 잘못해서라기보다 정부 권유로 부실투신을 인수하고 대우 채권의 손실을 부담해 생긴 것으로 오너의 책임을 묻는 사재출연은 곤란하다" 면서 정부의 진의를 파악하는 등 고심하고 있다.

현대투신은 사실상 파산상태다. 이 경우 수익증권 계약자들에게 피해를 넘기고 회사는 매각.청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증자든 대출이든 막대한 자금을 집어넣어 현대투신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이 부담을 져야 하는가.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은 '부실 책임과 부담 능력에 상응한 고통분담' 이었다.

현대투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하면 된다. 그러면 우선 정부는 어떤가. 1989년의 증시부양책, 한남투신의 반강제적 인수, 대우채권에 대한 사실상의 원금 보장 등 현대투신 부실에는 정부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그런데 정부가 책임진다는 것은 당시의 정책 담당자들에게 다 물어내게 할 수 없는 한 결국은 국민 부담이다.

현대투신 계약자로서 채권 원금을 보장받았던 경우라면 또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국민은 억울하게 덮어쓰는 셈이므로 이 방안에는 신중해야 한다. 다만 현대투신을 재벌의 사금고가 아닌 국민의 금융기관으로 전환시키는 차원에서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편 현대투신의 직접적 대주주인 현대전자 등의 참여 역시 모호하게 일반 주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투신의 간접적 대주주이고 그룹을 이끄는 총수 일가의 경우는 어떤가. 이들에게 삼성자동차의 경우만큼은 책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룹 차원에서 국민투신을 무리하게 인수했고, 수익률이 높다고 함부로 대우채권을 사들였으며,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고, 펀드를 불법 운영한 바 있다.

따라서 총수 일가는 이런 부실.불법 경영의 책임을 지고 조속히 현대투신 재건자금을 투여해야 한다. 이 자금은 완전히 날리는 것이 아닌 출자분이고, 경영 정상화만 되면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현대는 회사든 총수든 통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저 약간 생색만 내는 게 아닌 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한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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