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연초 장밋빛… 세차례 대폭락세

중앙일보

입력

'투 자자는 남몰래 눈물 흘리고 증권사 직원은 도망다닌다' .

연초만 해도 장밋빛 전망뿐이던 코스닥시장이 '투자위험지역' 으로 전락하면서 최근 투자심리가 냉각된 시장표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올들어 코스닥 주가가 세차례(1월 하순.3월 하순.4월 중순)나 대폭락하면서 연초보다 주가가 절반 또는 그 이하로 꺾인 종목들이 약 1백60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속칭 '깡통' 을 찬 투자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묻지마' 투자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사기만 하면 몇배씩 오르던 코스닥시장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면서 90년대 초 사회문제화됐던 투자자들과 증권사 직원들의 분쟁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 때와의 차이점이라면 당시에는 거래소시장에 신용거래가 있었기 때문에 주가가 폭락하면서 반대매매를 통해 깡통을 찼다면 코스닥시장은 신용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깡통을 찼는 데도 반대매매를 당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올들어 은행들은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대출세일을 벌였는데 이렇게 대출된 돈들이 코스닥시장으로 상당히 들어간 것으로 증권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90년대초 증권사에서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망했다면 지금은 은행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섰다가 낭패를 본 개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3천3백42억원에 그쳤으나 2월에는 1조8천5백64억원, 3월에는 2조5천7백38억원으로 급증했다.

올들어 석달동안 4조7천6백44억원이 늘어난 셈이다.

그 결과 전체 은행 대출금에서 가계대출 비중이 사상 최고에 달하고 있는데 금융계에서는 올해 증가분 가운데 1조원 이상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돈은 최근 코스닥 폭락사태로 대부분 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H증권사 대치동 지점 관계자는 "올초 개인들이 거래소시장을 떠나 코스닥으로 몰려들었는데 주가는 지난해 시장이 뜨기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며 "보통 반토막이 났고 70% 이상 날린 사람도 3명 중 1명" 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실에는 투자자와 증권사 직원들 간에 손실책임을 둘러싼 분쟁조정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분쟁조정 신청건수는 지난해 1분기 중 2백7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에는 4백24건으로 급증해 배 이상 늘어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코스닥시장과 관련된 분쟁들인데 코스닥시장의 경우 사실상 증권사 직원들도 잘 모른 채 종목을 추천했기 때문에 주가가 폭락하자 투자자들이 "알지도 못하는 종목을 추천해 손해를 봤다" 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D증권사 관계자는 "상당수 증권사 직원들은 부서를 옮기거나 휴가를 내 객장을 비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고 말했다.

만약 코스닥시장에도 신용거래제도가 있었다면 문제가 즉각 표면화돼 분쟁건수는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30대의 한 주부는 "그저 혼자만 손해본 것이 아니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을 뿐" 이라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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