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가계 대출 조였더니 … 기업 대출로 돈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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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업은행은 최근 2조원의 추석 특별자금을 중소기업에 대출해 준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의 두 배 규모다. 농협도 지난해보다 5000억원 늘어난 2조원으로 추석자금 지원액수를 늘렸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같은 명목의 자금 지원 한도를 지난해의 두 배 수준으로 증액한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추석맞이 중기 대출 확대’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 지원’이란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는 금융당국의 전방위적인 압박과 관련이 깊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정부가 은행들의 월별 가계대출 잔액 증가율(0.6%)을 엄격히 관리하면서 은행들이 기업 대출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번 달 들어 25일까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기업대출은 각각 3440억원과 7375억원이 늘었다. 7∼8월이 기업 대출 비수기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봐도 지난달 은행의 기업대출(원화)은 전달 3조2000억원 감소에서 5조9000억원 증가로 크게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3조4000억원 증가에서 2조3000억원 증가로 주춤한 상태다.

 최근 신용보증기금(신보)의 서울시내 17개 지점엔 각 은행 대출 담당자들이 마케팅을 위해 몰려들고 있다. 신보 보증이 붙어 있는 대출은 부실화돼도 은행이 손해볼 게 없는 ‘안전자산’이다. 신보 신용보증부의 강성일 과장은 “은행 관계자들이 대출 상품을 소개하기 위해 신보 지점에 많이 오고 있다”며 “우량 중소기업을 잡기 위한 은행 간 경쟁이 최근 들어 매우 치열해졌다”고 전했다. 은행들이 특별 출연한 돈의 12배까지 신보가 보증해 주는 협약보증도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늘리면서 소진율이 지난 6월 53%에서 최근 60%를 넘기며 빠르게 차고 있다.

 은행들이 최근 이처럼 기업대출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이번 달 가계대출증가율이 정부의 가이드라인(0.6%)을 이미 넘겼기 때문이다. 농협은 지난 17일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일찌감치 넘겼고, 신한·우리은행도 최근 목표치에 도달했다. 하나은행은 이번 달 가계대출 여력이 390억원에 불과한 상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 16일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만나 “기업 자금 공급에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하는 등 정부가 기업 자금 공급을 독려하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올인’하게 되면 자금 사정이 어려운 소규모 자영업자나 서민들은 제2금융권을 전전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획일적인 가계 대출 규제가 계속되면 서민들은 제2금융권으로, 은행은 기업대출로 쏠리는 여러 가지 형태의 풍선효과가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은행들은 이 기회를 틈타 자체적인 금리 인상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신규 마이너스 통장 대출의 가산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다른 은행들도 다음 달 일부 제한했던 대출을 재개하는 대신 금리를 높일 계획이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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