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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인권 고발을 훼방하는 현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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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20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영화 ‘김정일리아’가 상영 도중 갑자기 중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영화는 북한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다. 한국대학생포럼 등 7개 대학생 보수단체가 ‘8월의 편지,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이란 행사를 진행하면서 스크린 위에 올렸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 민주노총·금속노조·민주당·진보신당 등 이른바 ‘희망시국대회’ 시위대도 모여 불법 집회를 열고 있었다. 영화 상영을 둘러싸고 두 행사 주최 사이에 설전과 막말이 오가는 사이 전력 공급선이 절단돼 스크린이 꺼졌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북한을 보는 상반된 시각이 충돌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영화는 12명의 탈북자가 북한의 인권 유린과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폭로한 내용이다. 미국 여류 감독이 제작해 2009년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는다. 제목 ‘김정일리아(Kimjongilia)’가 베고니아 품종의 붉은 꽃으로 북한에서 ‘김정일화(花)’로 불리며 신성시된다는 사실이 암시하듯 북한에는 목에 가시 같은 영화다.

 희망시국대회 참가자들은 김정일리아가 상영되는 스크린을 향해 생수통을 던지는 등 상영을 방해했다고 한다. “너희들 어용이지” “(아르바이트비) 10만원 받고 왔냐” 등의 막말도 내뱉었다. 생수병으로 대학생들의 얼굴에 물을 끼얹기도 했다. 그러다 누군가 전력선을 끊은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를 트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종북(從北)세력의 소행인가. 현재로선 뚜렷한 물증(物證)이 없어 누구의 짓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다만 예리한 절력선의 절단면을 보면 고의로 자른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대학생들은 희망시국대회 측에 혐의를 두고 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겠다.

 경남 통영에선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그 두 딸을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구출하려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북한의 인권 유린은 북한 내부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북한의 인권 현실을 외면한 채 통일 운운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밀알을 자임하는 젊은이들의 행사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