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유전자 보유자의 새 인생 설계

중앙일보

입력

미국 워싱턴州 시애틀의 스티븐 피터슨(39)은 어릴 때 할머니가 병에 걸려 요양원에 간 적이 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이 되면 으레 약해지는 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피터슨이 17세 됐을 때 당시 45세의 아버지도 할머니처럼 척수소뇌성 운동실조증이라는 희귀한 유전병 진단을 받았다.

피터슨이 그 후 20년 동안 철저히 알게 됐듯, 그 병은 근육을 관장하는 소뇌를 파괴한다. 눈의 근육이 약화돼 사물이 둘로 보이는 증세로부터 병이 시작된다. 나중에는 팔다리가 힘을 잃는다. 그러다가 결국 음식을 삼키는 근육도 움직일 수 없게 돼 위관(胃管)을 통해 인공급식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환자들의 정신은 멀쩡하다.

피터슨은 30대에 접어들자 자신도 혹시 그 병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됐다. “술을 두어 잔만 마셔도 시야가 흐려지곤 했다. 한밤중에 일어나면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친구들은 자신들도 그렇다는 말로 그를 안심시켰다. 의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제 20대가 아닌 30대라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피터슨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1995년 그 병의 유전자 검사법이 개발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검사 결과 이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계속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즉시 검사를 신청했다.
검사 결과는 역시 걱정했던 대로 나왔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고 처자식을 위한 자금계획을 세우고, 할리 데이비슨을 새로 사는 등 평소 안하던 사치도 부렸다.

피터슨은 현재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발병을 어느 정도 늦춰 55세까지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게 질병인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인생을 절제할 수 있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자녀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유전자 검사는 생각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때쯤이면 치료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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