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희 〈연상연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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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을 어떤 작품으로 시작할까 하고 많이 궁리했었다. 처음이니 만큼 우리 나라 만화를 선택하고 싶었고, 만화를 처음 하는 사람도 부담이 없도록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을 선택하고 싶어서였다.

사실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인기 작품은 그에 비례해 작품의 길이가 정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단편이 아니고서는 길지 않은 작품이면서도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만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연상연하'. 2권으로 완결된 이 만화는 만화잡지 '나인'에 연재되었던 것을 묶은 것으로 잡지가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만큼 약간 성인 취향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 한승희가 알던 어떤 커플의 이야기로 실화가 그 바탕이라서 현실성과 완결성이 뛰어나다.

남자 주인공 상현은 항상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과 쇠사슬처럼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어 자신의 부모처럼 이혼이라는 것을 하며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되는, 그런 운명적인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평생을 같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상현이 대학 2학년이 되어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하연을 만났을 때 상현은 자신이 드디어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5살이 많은 하연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녀가 중학교에 다닐 때 하연의 아버지가 사업을 부도내고 지방에 내려가 있는 사이 그녀의 엄마는 아버지의 친구와 불륜에 빠진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는 결국 아이를 가진 자신의 부인을 선택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하연의 어머니는 자살을 기도한다.

이런 기억이 그녀로 하여금 사랑을 믿지 않고 상현마저 거부하게 만든다.

상현의 끈질긴 구애로 결국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간다.(같이만 산다. 아무 일 없이)상현에게 있어 그녀는 자기의 남은 생애를 같이 할 운명의 상대이지만 하연에게 있어 그는 자신의 남동생 보다도 1살이 어린, 정말 동생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할 때 그녀는 도망가 버린다.

상현의 끊임없는 사랑도 보기 좋고,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사랑을 곱지 않은 눈길로 보는 인물들의 등장도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이를테면 상현을 좋아하는 후배,창희는 하연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부러워 자신이 상현을 좋아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에 비해 하연을 좋아하는 과의 조교는 정말 하연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상현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아리송한 인물이다.

하연의 막내 동생은 자신보다도 1살이 어린 누나의 남자친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흥분하지만 자신은 애인이 임신하는 바람에 누나나 형보다도 먼저 결혼하게 된다.

거기에 창희의 소꿉 친구이자 같은 과 친구인 우혁(남자)은 고교 때 친구 신우(남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황당한 사실도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부수적인 등장 인물로 인과성 없는 관계가 없다. 서로의 관계는 필연적이면서도 캐릭터가 모두 선명하면서 재미있다.

짧지만 완성도도 높고 구성력도 뛰어나고 해피엔딩이지만 나름대로의 여운도 남겨 놓았다.

이야기상으로 그들은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실제 인물들이라고 하니 그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만화를 보고 난 후라면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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