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탐구] 하드코어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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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OVA로 발표한 후, 인기에 힘입어 89년 극장에서까지 〈우로츠키 동자〉 를 공개한 '타카야마 히데키' 감독과 원작자인' 마에다 토시오'는 (〈요수전선〉, 〈요수교실〉, 〈음수학원〉) 일본 괴기담의 전통으로부터 끌어들인 인간계, 마계, 수인계라는 공간설정과 그 안에서 대결구도로 펼쳐지는 이야기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 하드 고어와 하드 코어라는 극한의 자극적 표현이 동원된 이 작품은 일본 하위의 여러 양상이 남성 소비자를 위한 암울하고 묵시록적 공식에 따른 작품이기도 하다.

하드 코어와 하드 고어는 한쪽의 끝이 다른 쪽의 시작과 맞닿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연결성을 갖는다. 대개 극한의 호러는 극한의 섹스를 동반하거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은 고도의 자극적 폭력을 수반함으로써 최대한 고조된다는 상업주의의 공식은 일본에니메이션의 영역에도 어김 없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1987년 OVA로 발표된 뒤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극장에서까지 상영된 다카야마 하데키 감독의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의 골격을 이루는 것은 괴기담의 겉 모양을 띤 극한적 폭력과 포르노그래피를 모색케 하는 섹스의 반복적인 묘사이다. 그러나 작품이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는 과도한 섹스와 폭력을 단순히 보기 싫다고 외면만 할것이 아니라, 그 안의 구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제법 복잡한 일본 하위문화의 여러 가지 양상이 골고루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는 애초에 설정된 이야기 구조 자체가 정상적인 섹스를 상징하고 있지 않다. 세상은 사람이 사는 인간계, 마귀들이 사는 마계, 그리고 반인반수들이 지배하는 수인계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3천년 마다 세 가지 세계를 관장하는 초신이 부활하면 이 세상은 모두 없어져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왕국이 건설된다. 수인계의 '아마노 지쿠'는 이 같은 전설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위해 여동생인 '메구미'와 함께 인간계로 초신을 찾아나선다.

한편 마계의 괴물들 또한 자신들의 세상이 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전사인 '스위카카주'를 인간계로 보낸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것은 언뜻 보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연약하고 바보스러운 대학생 마구모였다.
〈우로츠키 동자〉의 첫 섹스 장면은 마구모가 몰래 연모하는 여학생 아케미를 훔쳐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원래 아케미를 면담하려고 불렀던 여교사가 은근히 그녀에게 동성애적인 접근을 시도하자 아케미는 반항하고, 이에 교사의 탈을 쓰고 있던 괴물은 본색을 드러내면서 온몸의 촉수를 드러내서 아케미를 꼼짝못하게 묶은 다음 마치 기다란 뱀처럼 생긴 입에서 튀어나온 촉수로 아케미를 겁탈한다.

사실 이 장면의 앞부분이나 뒷부분 어디서도 마귀가 하필이면 아케미를 성적으로 공격해야 하는지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있다면 그가 마귀라는 것 뿐. 다만 일관되게 지켜지는 공식은 그가 마귀 또는 초신 에너지를 얻을때나 변신을 할 때는 반드시 성적인 접촉이나 자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밖에서 이 장면을 엿보던 나구모가 경약하고 인기척을 느낀 괴물이 나구모를 공격하자 아마노 자쿠가 나타나 그를 구하고 괴물과 대결한다. 실제로 이 한 장면만으로도〈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는 '저패니즈' 코어가 선호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농축하고 있다.

여학생들 간의 동성애(의외로 남성들간의 동성애를 다룬 코어가 드문 것에도 주의해야 한다). 힘을 가진 쪽이 강제로하는 위압적인 섹스, 그리고 그것을 훔쳐보는 관음주의, 저항못하는 가련한 희생자를 향해 수십개 촉수를 한꺼번에 삽입하는 극도의 가학성, 괴물의 촉수나 기계장치로 대치된 남성 성기가 상징하는 도구를 이용한 성적 능력의 과장 등등.
화면은 온통 마초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일본 남성의 소심성과 공격본능을 대리만족시키는 장치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가 이토록 비정상적이며 과장되고 가학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초신전설 우로츠키 동자〉가 추구하는 강도 높은 대중정서의 자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케미와 나구모의 연애담에서 보여지는 멜로 드라마적 통속성은 둘째로 하더라도, 마귀와 초신의 몸을 빌어 자행되는 극한적 폭력은 사실 영웅이 되고 싶다. 나를 억압하는 모든 조건들을 박살내고 세상으로 하여금 나를 우러러 보게 하고 싶다는 것과 공격심리를 자극하는 또 하나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가령 초신으로 의심되는 나구모를 공격하기 위해 마계의 괴물들이 도구로 선택한 인간은 하필이면 아케미를 짝사랑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소심한 학생 니키이다. 니키는 마음이 약할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연약한 존재로서 어느날 불량 여학생들의 섹스 파티에 끌려갔다 심한 모욕을 당하고 극심한 분노에 휩싸인다. 발 아래로 그를 짓누르며 깔깔대는 여학생들을 향해 니키는 '너희들 모두 죽여버리겠어'라며 분노하고,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파워가 분출되어 그 자리에 있던 십 수명의 여학생들이 갈갈이 찢겨나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광경을 보고 경악과 공포에 휩싸인 니키에게 악마들이 나타나 속삭인다. '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게 아니었나? 무엇이든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 고개를 끄덕이는 니키에게 악마는 커다랗고 흉칙한 성기를 던져준다. '어서 네 것을 잘라내고 이걸 달아라. 그리고 주변에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의 피를 마셔. 그러면 넌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지.'

결국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니키는 자신의 부모마저 무참히 살해한 다음, 초능력을 지닌 존재로 변신해서 나구모와 대결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위기에 빠진 나구모를 염려하는 것 못지 않게 은연중 자신도 한번쯤은 꿈꾸었음직한 니키의 통쾌한 복수극에 동조한다.

일본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능력을 쓰는것과는 달리 '내 비록 지금은 약하지만 언젠가는 힘을 길러 나를 괴롭히는 놈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리라' 쪽에 가깝다. 겉으로 보면 가장 안정되고 평온해 보이는 것이 일본사회지만, 꽉 짜여진 사회질서 속에 그들은 반항을 꿈꾸며, 실제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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