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눈 밝은 강남 부자들, 2008년 위기 땐 BW로 수익률 1200%…2011년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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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미래를 보고 투자하지만 하수는 분위기에 편승한다.” 투자 고수의 특징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투자의 달인’은 보통사람과 달리 투자를 한다. 이달 초 2100선을 훌쩍 넘던 코스피지수는 12일 1700선까지 뚝 떨어졌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한국의 부자를 대표하는 서울 강남 부자는 어떻게 투자하고 있을까. 이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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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금융위기가 닥치자 서울 강남의 자산가 A씨(62)는 고민에 빠졌다. 증시가 급락하고 시장이 공포에 빠진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 선택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재던 A씨는 5개월이 지난 이듬해 3월 기아자동차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거다.” A씨는 21억원어치의 기아차 BW를 샀다. 그리고 1년8개월이 지난 지난해 11월 신주인수권을 행사했다. 행사가격은 6880원. 당시 약 5만원인 기아차 주식을 행사 가격에 사들여 판 것이다. 결과는 대박. 21억원으로 120억원 넘게 벌었다.

 #2011년 8월 증시가 급락하자 A씨는 다시 고민 중이다. 이번에 A씨가 주목하는 건 이탈리아 국채다. 이탈리아가 비록 재정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국가 부도의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A씨는 조만간 이탈리아 국채 100억원어치를 살 예정이다.

 A씨뿐 아니다. 한국의 ‘수퍼리치’는 위기 때 기회를 본다.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2008년의 가을과 세계 증시가 급락한 2011년 여름, 일반 투자자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 자산가가 모인 곳, 서울 강남의 부자는 어떨까. 그들은 달랐다. 투자할 곳을 찾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김재훈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남센터 프라이빗 뱅커(PB)는 “주가가 급락하자 일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담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며 “2008년 위기를 경험해본 고객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2008년 위기가 ‘서투른 경험’이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경험을 바탕으로 더 빨리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는 것이다. 금융자산 규모가 30억원이 넘는 이른바 ‘수퍼리치’ 80명이 그의 고객이다. 김 PB가 직접 관리하는 고객 돈만 1000억원이 넘는다. 그는 “보통 주가가 하락하면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라’고 한다”며 “하지만 강남 부자는 급하게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사들였다. 칼날이 아니라 ‘도끼’를 잡았다”고 말했다. ‘폭락 뒤 반등’이라는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의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3년 전과 지금, 강남 부자의 투자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한발 더 진화했다. 속도는 빨라지고 투자 대상도 넓고 다양해졌다. 2008년 고액 자산가의 성공 투자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①주가가 급락했지만 부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삼성전자·SKT·KT·한전·KT&G 등 ‘빅5’ 위주의 주식 ②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일시적 자금난에 시달렸던 기업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전환사채(CB) ③전·월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강남 테헤란로의 수익형 부동산 등이다.

 3년이 지난 요즘엔 강남 부자는 더 복잡한 상품에 관심을 갖고 시야도 해외로 돌리고 있다. 박경희 삼성증권 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최근 고객은 2008년 위기 때와 같으면서도 다르게 행동한다”며 “2008년에는 낙폭이 과도했던 대형주 위주로 주식을 매수했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대형주를 사려하기보다 성장 가능성과 영업이익률, 회복 강도까지 꼼꼼히 따진다”고 말했다.

 수퍼리치는 자문형 랩이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상품도 적극 이용한다.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는 “자문형 랩의 특징은 일반 펀드와 달리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것”이라며 “최근 증시가 급락했지만 평소 증시가 계단식 상승을 할 때 투자자문사가 보여준 능력을 신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주가 지수의 움직임보다 수익률이 두 배로 오르내리도록 설계된 레버리지 ETF는 이미 매매가 활발하다. 김재훈 PB는 “ETF의 특성을 잘 꿰뚫고 있는 투자자는 코스피지수 회복을 노리고 레버리지 ETF를 사두거나 지수의 움직임을 예측해 단기매매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객이 직접 해외 채권과 주식을 주문할 수 있는 우리투자증권 전화센터에는 24시간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가격이 급격히 떨어진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 유럽의 은행주를 사려는 문의 전화다. 김재훈 PB는 “2008년 미국 씨티은행 주식을 사서 고수익을 올린 고객이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며 “그리스와 달리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안전할 것이란 믿음에 따른 베팅”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다. 시장이 침체된 데다 주가 급락의 영향이 부동산 가격에까지 미치진 않았기 때문이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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